"나이스 쥴리 르네상스 여신 / 볼케이노 불꽃 유후 쥴리 / 서초동 나리들께 거저 줄리 없네 / 나이스 쥴리 춘장의 에이스 (중략) / 나이스 쥴리 국모를 꿈꾸는 여인 / 멧돼지도 웃지 웃어."
민중 가수를 자처하는 백자가 윤석열의 아내를 조롱하며 만든 '나이스 쥴리'라는 노래의 가사다. 유흥주점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뮤직 비디오까지 만들었다. 유튜브 조회수가 15만 회를 넘어섰다. 립싱크하는 젊은 여성의 몸을 선정적으로 훑는, 또 다른 버전도 10만 회를 넘었다. 성공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조롱과 경멸의 단어만 나열되어 있는 이 노래에서 풍자가 느껴지는가. 만일 느꼈다면, 당신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문화 지체를 겪고 있는 시대착오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 노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풍자가 아니라, 완전한 여성 혐오다. 그리고 한 직업군을 멸시하고, 그들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폭력이다. 여성 운동이 세계사적 주요 어젠다가 된 지금, 진보의 이름으로 버젓이 퇴행을 노래하고 있다.
풍자는 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대선 후보로 나선 윤석열을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쪽에서 짜장으로 부르든 춘장으로 부르든 자유다. 하지만 노래는 그의 아내를 성적으로 조리돌림하고 있다. 그것도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사실처럼 꾸며서. 그 경멸과 억측의 절정은 "거저 줄 리 없네"라는 대목이다. 여성을 완벽하게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주체성을 아예 지워버렸다. 전근대의 남성 권력적 시선을 거리낌없이 전시하고 있다. 종로의 쥴리 벽화 소동만큼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도 성명을 내고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가르는 전형적인 이분법으로 여성 혐오를 드러내며 조롱했다"고 노래를 비판했다. 이어 "가부장 사회는 보호할 여성과 보호할 가치가 없는 여성을 나눠 통제하고 폭력을 정당화했다"며 이 노래가 그 폭력의 구조에 봉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지난 시절 운동권의 조직 보위론도 그랬다. '큰일'하는 남자들을 위해 조직 내 성폭력들을 반성 없이 은폐했다. 진보연하는 그들에게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의 장식일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노래가 유흥주점 여성 종사자들을 하등 시민으로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감정 노동의 현장에 있는 여성들을 도덕적으로 파산한 인격체로 만들어 비웃고 있다. 쥴리는 퍼스트 레이디를 꿈꾸면 안 되는가. 직업엔 귀천이 없고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 우리 헌법은 쥴리를 차별해선 안된다고 써놨다. 쥴리도 퍼스트 레이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그날, 우리 모두는 한 뼘이라도 나은 인간이 되어 있지 않겠는가. 그게 역사의 진보다.
백자가 이전에 만든 민중 가요를 들어봤다. 그의 노래들은 지난 시절의 운동가요들처럼 '도구화'된 정서를 보여줬다. 역사에 대한 전망은 상투적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평면적이었다. 정신적으로, 미학적으로 게으르다는 얘기다. 반성 없는 미학적 행위는 타락하게 돼 있다. 선악이 유치하게 극화된 역사의 동화 속에 빠져 있는 어른이 너무 많다. 풍자가 아닌 소음이 돼버린 노래를 이제라도 그만 부르기 바란다.
그가 만든 노래 '미래 선언'에 이런 가사가 있다. "함께 어깨를 걸고 모두가 빛나는 세상을 만들 거야." 묻고 싶다. 그 '빛나는 세상'에 쥴리의 자리는 있는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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