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수도 카불의 한국대사관도 문을 닫았다. 정부는 ‘잠정 폐쇄’라고 했지만, 아프간 정국의 혼란상이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어 대사관 재개방 시점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부는 16일 “아프간 사정이 급격히 악화돼 15일(현지시간) 현지 주재 우리 대사관을 잠정 폐쇄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사관 직원 대부분은 중동의 제3국으로 긴급 철수했으며, 최태호 대사 등 직원 3명은 현지의 안전한 장소에 머물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도 직원 철수를 완료한 상태다.
한국과 아프간은 1973년 수교했다. 1975년 대사관을 설치했지만 3년 뒤 공산 정권이 들어서며 단교했다. 미국 ‘테러와의 전쟁’ 시기를 거쳐 2002년 1월 수교를 복원하고 같은 해 9월 카불에 현재의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을 새로 열었다. 그러나 15일 탈레반이 끝내 수도를 집어삼키자 19년 만에 다시 공관을 비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뺄 수 있는 인력 다 빼라" 지시
공관원 철수는 급박하게 진행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의용 장관은 전날 오후 최 대사와 화상 회의로 공관원 철수 여부를 논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의 도중 최 대사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떴고, 잠시 뒤 돌아와 ‘우방국으로부터 (공관에서) 빨리 이동(철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왔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 우방국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군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직감한 외교부는 급히 “뺄 수 있는 인력을 다 빼라”는 결정을 내렸다. 철수 결정과 실행 모두 단 하루에 이뤄진 것이다. 긴박했던 상황을 반영하듯, 16일 오후까지도 아프간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엔 잠정 폐쇄를 알리는 공지도 올라오지 않았다.
철수 과정에서도 우리 공관원들은 미국 측이 제공한 이동 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사관은 아프간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한 올 상반기 미국과 ‘유사 시 한국 공관원 철수에 미국 자산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만일을 대비한 MOU 덕에 신속히 제3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셈이다.
잔류 한국인 1명도 곧 철수
3명의 공관 직원이 아직 카불에 체류하는 것은 재외국민 한 명이 철수하지 못한 탓이다. 이 당국자는 “우리 국민 철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16일 중 아프간을 떠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 대사 등 남은 공관원들의 철수 일정은 유동적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에 잔류한 공관원과 우리 교민들을 마지막 한 분까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한국보다 먼저 공관원 철수를 시작한 미국은 대사관 직원 전원을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한국 등 65개 이상 국가와 전날 “아프간에서 떠나기를 원하는 외국인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출국을 보장해달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반면 탈레반과 외교 교류를 이어온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 현지 대사관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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