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의 view] 코로나19로 인한 승객감소, 버스 요금 동결로 고사 위기 내몰린 마을버스
“이 동네에서 버스 운전하면서 유치원 다니던 꼬마가 아가씨 되는 것까지 다 봤죠. 내 기사 인생 역사상 버스 타는 승객이 이렇게까지 줄어든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마을버스 ‘종로08번’ 기사 안금열(62)씨는 올해로 꼬박 26년째 같은 운전대를 잡는다. 좁다란 버스 운전석 위에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고, 2008년엔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이번 코로나 19 사태처럼 불황의 여파를 ‘버스 안’에서까지 체감하긴 처음이다. 종로08번 버스 이용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이후 반토막이 났다. 불어나는 운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하루 운행량을 30% 가까이 줄였지만, 기약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몇몇 기사들이 스스로 일을 그만두면서 남겨진 이들의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
서울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구로 09번' 버스 기사 김은석(69)씨는 월급이 확 줄었다. 김씨의 상황은 그나마 괜찮은 편, 주위 다른 노선 마을버스 기사들은 아예 몇 달씩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옆 동네 금천구에선 몇몇 노선이 운행을 중지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무리 승객이 줄었다 해도 배차 간격이 조금만 늘어지면 바로 난리가 나요. 그만큼 마을버스가 어떤 이들에겐 없어선 안 되는 이동수단인 거예요.”
마을버스는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닿지 못하는 동네 구석구석의 빈칸을 잇는다. 교통 사각지대에 사는 서민들에겐 여전히 ‘없어선 안 될 발’이지만 코로나 19 직격탄을 맞아 ‘고사’ 직전에 내몰려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6년 전 요금 그대로 ‘900원’에 머물러 있어 더 큰 타격을 봤다.
승객이 감소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사실상 공영으로 운영되는 시내버스나 지하철과는 사정이 다르다. 마을버스는 ‘민영 사업’이기 때문이다. 사업은 민영이나 제공하는 서비스는 ‘시민의 이동권’과 직결되는 공공 영역이기에, 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수익성이 낮은 노선을 폐지할 수도 없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벼랑 끝 위기에 처한 서울의 마을버스 기사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영상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종로 08번 : 고지대 ‘토박이’ 동네 노인들의 버스
“여기가 워낙 고지대라 운전하기에 굉장히 거친 환경이에요. 좁은 골목들이 촘촘하게 갈라진 언덕길이니까. 근처 대학 다니던 학생들이 방을 빼면서 전보다 한산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이 동네에 눌러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대부분 30-40년씩 한 자리 안 떠나본 노인들이죠. 명절 때면 서울이 다 비어도, 여긴 북적북적할 정도라니까. 이분들은 마을버스 없이는 시내까지 나가기도 힘든 분들이죠. ” (안금열 기사)
종로08번 버스는 서울에 드물게 남은 산동네인 와룡동과 종로 광장시장을 오간다. 인근 학교가 등교를 제한해 책가방 든 학생들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지만 고지대에 사는 고령층 노인들에겐 마을버스만이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다. ‘뒤로 누워 올라가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명륜3가동에선 지하철 한번 타려면 건장한 성인도 30분 넘게 걸어야 한다. 걸음이 느린 노인들에겐 턱도 없는 거리다.
“노인분들이 이 버스를 타고 광장시장에 나가 장 보시고, 거기서 또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청량리시장까지 다녀오세요. 어르신들이 장보기엔 시장이 익숙하니까.” 종로08번은 대형 약국, 혜화동 서울대병원 앞도 지난다. 차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 느릿느릿 타고 내린다. “거동 불편한 분들이 많으니, 타고 내리실 때마다 꼼꼼히 살피는 것도 기사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예요. 한 정거장 거리도 요즘 같은 폭염에는 버스로 가셔야 해요.” 아무리 승객이 줄어도 마을버스가 적게 돌 수 없는 이유다. 이날 정류장에서 만난 주민 여모(77)씨는 “가까운 동대문만 나가려고 해도 시내버스를 타려면 한참 걸어야 한다”며 “주민들에겐 꼭 필요한 버스”라고 말했다.
코로나 타격으로 매출은 -40%, 버스 요금은 6년째 ‘동결 중’
코로나19로 인해 종로08번 버스 매출은 40% 이상 급감했다. 지난해 서울지역 마을버스 이용객이 전년도보다 27%가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평균 이상의 타격을 받은 셈이다. 이승재 와룡운수 대표는 작년과 올해에만 대출을 7억 원 넘게 받았다. 당장 기사들에게 지급할 급여가 없어 부랴부랴 빌린 돈마저 바닥을 보이는 상황이다. “마을버스는 기본적으로 민영 사업이죠. 준공영인 시내버스와 달리 적자가 나는 경우에만 서울시에서 운영지원금을 지급해요. 그마저도 지난해엔 ‘고통 분담’하자면서 반절도 지급하질 않았죠. 그간 미루고 미루던 요금 인상을 요구했는데 그마저도 묵살됐고요. 견딜 상황이 안돼 ‘파업 선언’을 하니 올해 3월부터야 겨우 지원금이 90% 나옵니다.” 언 발에 겨우 오줌은 눴지만 상황은 여전히 마른 걸레를 쥐어짜는 수준이다.
현재 서울의 마을버스 요금은 성인 900원, 청소년 480원, 어린이 300원이다. 성인 요금은 6년째, 어린이 요금은 14년째 동결돼 있다. 물가 상승율조차 반영하지 못한 금액이다. 경기도 1300~1400원, 부산 1100~1300원, 인천 1000원, 밀양 1500원인 것과 비교하면 전국 평균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환승 제도는 마을버스에 치명적이다. 1회 환승을 기준으로 성인 요금이 336원 꼴이다. “버스 요금 인상은 표심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보니, 매번 미뤄지고 미뤄졌어요.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고 나서도 역시나 묵살됐고요. 이대로라면 마을버스 자체가 살아남기 힘들어요.”
구로 09번 버스 : 지하철역서 소외된 ‘사각지대’ 잇는 징검다리
구로09번 버스는 신도림역과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오가며 1호선과 2호선의 영향권을 벗어난 구로동 동네 구석구석을 누빈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구로구청이나 구로보건소, 구로경찰서, 고대 구로병원의 경우 인근 지하철역인 대림역과 남구로역 중 어디에서 가더라도 20분 이상 걸어야 하는 위치다. 지하철역으로부터 섬처럼 뜬 위치에 주민 편의시설이 몰려있다 보니 마을버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디지털단지 쪽으로 출근하는 젊은이들이나, 학교 가는 학생들, 구로시장에 장 보러 가는 노인들까지, 여긴 승객 연령이 아주 다양해요. 10대부터 80대까지 있죠. 최근에는 보건소 가는 승객들이 부쩍 늘었어요.” (김은석 기사)
올해로 18년째 마을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김은석 씨의 월급은 코로나19로 크게 줄었다. 한 달에 26일 일하고 260만원 정도 받던 월급이 지금은 22일 일하고 210만원 선이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가 없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운행 대수를 줄인 탓이다. “서울의 마을버스 기사들이 모여있는 노동조합 단체채팅방을 보면 여기 상황이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급여가 몇 달씩 밀려 있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요.” 구로구와 가까운 금천구의 경우 작년과 올해 벌써 2개의 노선이 폐선됐다. 김씨 역시 월급을 한 달에 두 번씩 쪼개 받고 있다.
차고지에 방치된 버스들, 시민들 원성은 더 커져
구로 09번 노선에 투입되던 버스 13대 중 3대가 빠졌다. 운행이 중단된 버스는 양천 공영버스 차고지에 서 있다. “지난해 5월쯤 1대 줄이고, 연말에 또 1대 줄이고, 그렇게 3대나 빠지게 됐죠. 5분 하던 배차 간격이 9분까지 가니까 승객들이 쏟아내는 불만도 커졌어요.”(김은석)
지난해 말 김씨는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한 달 가량 일을 쉬었다. 그때 마을버스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했다. 밀접접촉자였던 동료들 역시 자가격리에 들어가며 구로09번 노선은 운행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운행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도 역부족이어서 급기야 휴업에 들어가자 민원이 빗발쳤다. “정류장마다 휴업 안내문을 붙여서 미리 공지를 했는데도, 회사며 구청이며 전화기에 불이 낫다고 하더라고요. ‘마을버스 없으면 출근 못 하는데 왜 운행 안 하냐고’ 거세게 항의가 들어와서요. 구청 교통 행정과에선 감당이 안 돼 아예 전화기를 내려놨대요. 알고 지내는 승객들한테서 제 개인번호로 전화까지 왔어요. 언제 다시 나오냐고.”
마을버스가 휘청거려선 안 되는 이유
기사들은 바라는 것은 딱 ‘하나뿐’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마을버스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 ‘요금을 올리는 것’. 정류장에서 만난 승객들은 ‘요금 인상 취지’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구로시장 앞의 김모(76)씨는 “한꺼번에 확 오르면 부담이 되겠지만 조금씩 올리는 건 괜찮다고 본다”며 “우리 발과 다름없는데 사라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혜화동에서 만난 여모(77)씨 역시 “승객 입장에선 그대로인 것이 좋지만 버스회사의 경영난을 생각하면 올려도 크게 반발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인터넷 주문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삐걱거리는 몸을 돌보기 위해 병원 찾는다. 폭염 속 잠깐 쉬어갈 곳이 되기도 한다. 재택근무가 허락되지 않는 서비스업 노동자, 청소 노동자, 돌봄 노동자들은 아침마다 일터로 향한다. 집에 머물러도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 이들이 있지만, 그게 당연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마을버스를 타는 이들이 줄어도, 마을버스가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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