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동의 없이 뒷모습도 사용 못해
일반인 피해 과장하며 언론법 강행
언론 불신 키워 민주주의 기반도 위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A씨는 지난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모 방송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얼굴이 노출돼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6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는 언론중재위의 조정으로 100만 원을 지급받았다. B씨는 자녀와 함께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방문한 뒷모습이 모 통신사 사진에 찍혀 1,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통신사 특성상 여러 매체에 사진이 제공돼 A씨는 400만 원을 지급받았다.
이 사례들은 언론중재위의 ‘2020년도 언론조정중재사례집’에 담긴 내용이다. 손해배상 지급 사례에서 일반인들의 경우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가 대부분이다.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보도가 아닌데도 동의가 없다면 언론이 일반인의 실명을 쓰거나 뒷모습조차 사용하기 어려운 시대다.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일반인들이 허위 보도로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지지하는 어떤 친여 교수는 “독극물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칼럼까지 게재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정말 일반인들을 해코지하는 언론이 있다면 처벌이 마땅하다. 법 개정 필요도 없이 지금이라도 최대 7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은 가중 처벌된다.
언론이 이런 엄중한 명예훼손죄 부담에도 보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310조)와 ‘진실하다고 믿을 상당한 이유의 존재’(대법원 판례)라는 위법성 조각 사유 때문이다. 공익 보도는 언론의 당연한 사명이지만 형사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우선 지향일 수밖에 없다.
물론 공익 보도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문제다. 시민의 분노에 편승하거나 피해자 주장을 과다하게 반영하다가 검증을 소홀히 해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2017년 ‘240번 버스기사’ 사건, 최근의 한강 실종 대학생 사건 등이 그런 경우다. 미투 관련 보도도 이런 점 때문에 분쟁이 많은 영역이다.
사회적 관심이 큰 이런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면 일반인이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노출될 일은 없다. 사실 대다수 기사는 정부와 지자체, 대학·병원 등 공공기관, 대기업이나 공적 인물에 대한 것이다. 이들에 대한 보도 공익성이 폭넓게 인정되는 덕분이다. 하지만 이들도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남발해 실명 비판은 갈수록 어렵다. 2015년 출간된 ‘언론중재위원회 손해배상제도의 기능과 효율성 연구’ 논문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얻기 위해 언론사를 압박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송 부담으로 인한 기자들의 위축 효과는 이미 작동하는 상태다.
민주당은 이마저도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일반인 피해를 들먹이지만 이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피해자란 조국 전 장관 일가일 터다. 그 사건으로 인한 증오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낳은 셈이다. 개정안의 여러 독소조항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민주당이 "일반인들이 언론의 무차별적 보도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혐오 정서를 퍼뜨리는 것이다. 언론 신뢰를 약화시키는 이런 독버섯은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허물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략은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지지자들의 적개심을 부추겼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답습했다. 이 개정안의 본질은 언론 증오다. 민주당 입장에서 대선 정국에서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데 증오보다 손쉬운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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