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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올 수 있는데 그냥 백신 맞으라? 아나필락시스 경험자들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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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올 수 있는데 그냥 백신 맞으라? 아나필락시스 경험자들 '불안'

입력
2021.08.19 04:30
6면
0 0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면역 과민 반응 적지 않아
경험자들 "현장에서 '금기 백신' 숙지 안 돼" 불안
증상 발현 대응책도 미비… "접종 포기" 속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시민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시민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스1

스무 살 무렵 폴리에틸렌글리콜(PEG) 성분이 포함된 화장품을 발랐다가 전신에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 아나필락시스(면역 과민 반응)를 겪은 김모(26)씨는 최근 'PEG 알레르기 반응 경험이 있으면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맞을 수 없다'는 질병관리청 지침을 확인하고 질병청 콜센터 1339에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상담원은 해당 지침을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병원에 문의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병원에 물어봤지만 의사 역시 PEG 알레르기가 뭔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아나필락시스 발생 가능성은 극히 적다"며 백신 접종을 권했다.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김씨는 결국 어렵게 예약한 화이자 백신을 취소했다.

아나필락시스 경험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두고 정보 부족과 미흡한 현장 대처에 불안해하고 있다. 아나필락시스는 우리 몸이 특정 물질(항원)에 대한 항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급작스러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증상으로, 백신 접종 과정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경험자들은 이상 반응 발생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할지, 유사시 접종 현장에 어떤 대책이 마련돼 있는지 궁금해하지만 당국은 이런 우려를 속 시원히 해소해주지 못하는 형국이다.

'백신 금기' 알레르기 숙지 안 돼

18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아나필락시스 경험자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부작용인데도, 방역당국과 의료진이 아나필락시스에 대해 잘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이날 기준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아나필락시스 의심 증상을 보였다고 신고한 사례는 656건이고, 이 중 166건은 백신과의 인과성이 인정됐다. 아나필락시스는 단순한 두드러기를 넘어 호흡 곤란, 혈압 감소, 쇼크 등 심각한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코로나19 백신과 인과관계가 있는 사망 사례(7건) 가운데 아나필락시스로 숨진 경우는 아직 없다.

방역당국도 이를 우려해 특정 알레르기 반응을 경험했던 사람은 관련 백신을 맞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질병청 지침에는 △PEG 알레르기 반응 경험자는 화이자?모더나 백신 접종을 피하고 △폴리소르베이트 80(식품 등에 쓰이는 유화제) 알레르기 반응 경험자는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 접종을 피하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접종 금기' 지침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아나필락시스 경험이 있다고 하면 다른 백신을 안내해주거나 대기를 권할 줄 알았지, 이렇게 정보가 부족할 줄은 몰랐다"고 황당해했다.

"증상 발현 시 119·응급실 무용지물"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 후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보이면 '즉시 119를 불러 가까운 병원을 찾으라'고 당부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는 경험담도 나온다.

교사 최모(27)씨는 이달 초 모더나 백신을 맞고 병원 권고대로 30분쯤 대기하며 몸에 이상이 있는지 살피고 귀가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목 안쪽이 급격히 붓는 느낌과 함께 호흡이 곤란해지는 등 아나필락시스로 추정되는 증상을 겪었다. 놀란 최씨는 바로 119를 불렀지만 "의식 있는 환자는 병원에 스스로 가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백신을 놔준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찾아갔지만, 일반 응급환자로 분류돼 3시간 이상을 대기해야만 했다. 병원에선 "백신 아나필락시스 반응인 듯하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권유했고, 최씨는 증상이 나타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알레르기 반응 완화제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최씨와 병원 모두 '알레르기 반응에 대비해 접종 후 일정 시간 병원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당국 권고를 따랐지만, 막상 일이 터지자 접종자가 의존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던 셈이다. 최씨는 "백신 접종 후 증상이 늦게 나타날 가능성도 고려해 부작용 환자를 전담할 의료진과 병실이 마련돼 있었다면 안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포심에 결국 2차 접종을 포기했다.

접종 후 최소 30분 대기… 사전검사도 방법

이달 초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20대 여성 A씨도 2차 접종을 앞두고 불안감이 크다. 수년 전 심각한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겪었지만, 어떤 물질이 그런 반응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하는 탓이다. A씨는 "외식업 종사자여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1차 접종을 했는데, 행여 2차 접종 때 그 끔찍한 증상이 재현될까봐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 아나필락시스 대응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백신 접종 시기가 임박했다면 사전 검사를 통해 아나필락시스 발생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자 수백 명이 증상을 겪은 만큼 아나필락시스가 드물다고만 보긴 어렵다"며 "최근 여러 대학병원에서 아나필락시스 유발 물질에 대한 피부 반응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을 마치고 병원에서 충분히 대기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아나필락시스는 대부분 접종 후 15분쯤 지나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보다 오래 병원에 머물면서 이상 반응 여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창훈 일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접종 후 30분 정도는 병원에 대기해야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즉시 의료진의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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