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사용자 남성 대부분일 가능성
여성 데이터 부족, 데이터 편향 낳을 수도
"안전, 디자인, 서비스 젠더 관점 필요"
자율주행차에서 운전을 하는 건 인공지능(AI)이다. 주변을 인식하면서 차선을 따라 안전하게 자동차가 이동하기 위해 AI에게는 도로 위 물체부터 운전자나 탑승자의 습관까지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주입된다. 전통적인 자동차가 그렇듯, 혹시 모를 충돌에 탑승자 부상을 최대한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만약 AI에게 주어진 데이터가 특정 사용자에 관한 것이라면, 그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자율주행차는 편리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기술일 수 있다. 과연 자율주행차는 '여성' 탑승자를 태울 준비를 하고 있을까?
여성 열 중 일곱, "자율주행차 못 믿어"
19일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가 주최한 '자율주행 자동차와 젠더' 포럼에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편의성과 안전성 차원에서 "여성 특성을 고려한, 젠더 관점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였다.
신기술의 시장 안착 가능성을 살펴보려면, 이 기술을 수용하는 그룹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게 첫 번째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초기 사용자는 남성이 대다수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탑승이 두렵다'는 응답(2018년 기준)이 여성은 73%로 남성(52%)보다 높았다. 자율주행 관련 기능을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을 때, 남성은 절반가량이 '있다'고 했고 안전(84%), 편의성(64%), 스트레스 감소(46%), 최신기술(30%)이라는 이유에서 자율주행 기술 자체에 아주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시장분석, AI라면 문제가 다르다
자율주행기술의 초기 사용자가 남성 중심이라면, 서비스 개발 방향이나 안전성 연구,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투입하는 데이터 등도 남성 위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구글 AI가 30, 40대 백인 중심으로 학습했다가 흑인 사진을 '고릴라'라고 인식했던 건 유명한 데이터 편향 사례다.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자율주행차량의 경우 초기엔 사적으로 구매하기엔 굉장히 비싼 가격이기 때문에 택시 같은 데 먼저 도입될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가볍게는 내부 인테리어에서부터 급정거 시 안전장치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고려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없다. 미국 인텔과 티그는 자율주행 자체에 대한 불안감, 자녀만 타는 경우에 대한 불안감 등 여성의 의견을 받아 '외부에서 차 안을 볼 수 있는 시스템' '야간 주행 시 최단 경로가 아니라 인구밀집 지역 통과' 같은 솔루션을 제안했다. 영국, 아이슬란드, 핀란드 등은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여성은 어떤 성별의 동승자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일반 차와의 차선 공유 수용성 조사 정도다. 그것도 남녀 구분 없이.
신기술 개발에 꼭 '여성' 고려해야 해?
쓰겠다는 사람 위주로 개발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자율주행차는 생명,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아무리 운전대를 AI에 맡기더라도, 에러가 발생했거나 이상징후를 보이면 인간이 개입해야 한다. 이때 수동운전으로 전환하는 반응시간은 나이,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주요 이동경로도 AI가 중점적으로 배우는 데이터일 텐데, 여성이 많이 오가는 길이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 스페인 대중교통 데이터 분석에서 이용 목적 순위가 1위 직장(30%), 2위 학업(13%), 3위 쇼핑(12%) 순이었지만, '돌봄'을 추가하니 25%(2위)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미 전통 자동차에선 여성이 배제된 부작용이 나왔다. 자동차 사고 안전문제에서 1997년까지 여성은 투명인간과 다름없었다. 남성 평균 치수의 더미(인체모형)만 태워 충돌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여성 더미가 추가됐지만 남성 더미에서 키만 줄였고 근육강도나 골밀도, 지방분포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1998년~2015년 정면충돌 사고를 분석한 미국 버지니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충돌 테스트를 통과한 차가 도로를 달린 결과, 여성 운전자의 경우 치명적 부상이 남성보다 73%나 더 높았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충돌 테스트에 여성 신체 특성을 반영한 더미 활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배경이다.
정승은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연구교수는 포럼에서 "젠더 관점을 반영하는 건 사회적 부작용과 비용을 감소시키고 기술을 확산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자율주행 데이터 수집, 가이드라인 개발에 젠더 편향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럼영상 ☞ https://youtu.be/8jlvCfDR9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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