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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3조 원 증액’의 정치학

입력
2021.08.1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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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재정을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최근 여당이 내년도 예산을 8%대 증액하라는 압력을 노골화 하면서 그의 대응에 다시 한번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홍 부총리.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재정을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최근 여당이 내년도 예산을 8%대 증액하라는 압력을 노골화 하면서 그의 대응에 다시 한번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홍 부총리. 뉴시스

경제정책에서 번번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백기를 들었다는 야유로 ‘홍백기’라는 별명까지 붙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지만, 무조건 항복만 한 건 아니다. 지난달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기재위에서 당론인 5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에 대놓고 반대하던 홍 부총리를 겨냥해 “길을 내는 것은 정치가 하는 것이고, 정부는 낸 길을 따라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자 홍 부총리는 즉각 “재정을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맞서기도 했다.

▦ 하지만 홍 부총리의 ‘저항’은 그때도 결국 관철되지 못했다. 여당의 강력한 압박 끝에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는 전 국민 지원도, 선별 지원도 아닌 ‘88%+α’로 누더기처럼 정리됐다. 홍 부총리는 볼멘소리를 했다는 기록만 남긴 채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이번엔 현 정부 마지막인 2022년도 예산안 편성을 두고 홍 부총리 취임 이래 재정정책을 둘러싸고 당정 간에 벌어진 마찰과 긴장이 다시 한번 재연되는 상황이다.

▦ 기재부는 지출 증가를 억제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는 분위기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예산안 초안에서 증가율을 올해 본예산 558조 원의 약 7.5%, 600조 원 선으로 제출한 배경이다. 7.5%는 2020~2024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따른 내년 총지출 증가율 5.7%보다는 높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확장재정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지난 4년간 예산 평균증가율 8.7%보다는 낮아 ‘방만재정을 꾸렸다’는 비난은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는 수준이다.

▦ 반면 민주당은 공공연히 8%대 증액을 요구하며 기재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8% 증액이면 정부안보다 3조 원 정도 많아진다. 600조 원 규모 예산에서 3조 원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3조 원이면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차 108만여 표의 3배에 가까운 유권자 300만 명에게 무려 100만 원씩을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여당의 증액 요구가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요구라면, 그런 ‘정치적 요구’의 정당성을 부인한 홍 부총리가 이번엔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사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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