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교민 출신 권용준씨]
"카불 점령전에도 탈레반 공격 빈번
지인도 집 무너지고 목숨 잃을 뻔
정세 불안... 反탈레반 운동 일어날 것
난민 받아줘야 아프간에 희망 생겨"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어두웠다. 무겁게 내리깔리는 한숨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아프간 교민 출신 권용준(60) 씨에겐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로 일했던 권씨는 돌연 사표를 내고 개인 사업을 하다 2002년 아프간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2015년까지 선교 활동을 하며 태권도장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아프간 교민회 부회장을 지냈다. 자녀들도 아프간에서 학교를 마쳤다. 권씨 가족에게 아프간은 ‘제2의 고향’이다. 2016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한 권씨는 아예 아프간 난민촌에 살며 그들을 돕고 있다. 태권도, 영어, 한국어도 가르친다. 잠시 한국을 찾은 권씨에게 20일 아프간 현지 소식을 전해들었다.
-아프간 현지 공포 상황이 어떤가.
“태권도 제자들, 친한 지인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탈레반이 카불에 들어온 후로는 통화하기 어렵다. 탈레반이 휴대전화를 검사해 외국 사람 이름이 있거나 외국 정부 관계자 연락처가 나오면 위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해외 번호는 다 지우고 소셜미디어도 삭제한다고 하더라.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조심스럽다. 혹시 그 순간 옆에 탈레반이 있으면 그들이 위험해질 테니까. 집에서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아마 휴대전화 충전을 못했을 거다. 멀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만 태우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에는 사정이 어떠했나.
“카불에는 지방에서 살다 피신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친척이라도 있으면 숙식을 해결하는데 그마저도 없으면 길이나 공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내 지인 중에도 아프간을 떠나기 위해 카불로 온 이들이 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은 없고 탈레반의 위협은 점점 커지고 있어서 많이 힘들어하고 불안해했다.”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 정권을 무너뜨렸다.
“나도 무척 놀라기는 했는데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본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부터 지방에서는 탈레반의 공격이 빈번했다. 내 지인도 얼마 전 탈레반이 그 지역을 폭격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집은 다 무너졌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어렵게 다시 만났다고 하더라. 난민도 많이 발생했다. 아프간에선 수십년간 종족·종파 간 분쟁이 계속됐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다. 소수종족은 탈레반 집권에 특히 더 두려울 수밖에 없다. 탈레반의 표적이었던 하자르족 출신 지인들이 많아 무척 걱정스럽다.”
-탈레반에 대한 현지인들의 공포는 어느 정도인가.
“아프간에 살았던 10여년간 나도 탈레반을 몇 번 마주쳤다. 주로 지방 산악 지역을 지날 때였다. 다행히 나는 무탈했지만, 탈레반 정권을 경험했던 지인들은 두려움에 덜덜 떤다. 당시 절도하면 손을 자르고, 부정한 짓을 했을 경우 돌을 던져 죽였다. 여자 혼자서는 밖에 다니지도 못했다. 어느 지방 도시에서는 탈레반이 여학교 우물에 독을 타고, 등굣길 폭탄테러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 아프간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충격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개탄스럽다.”
-아프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정세가 더 불안해질 것 같다. 분명 반(反)탈레반 운동도 일어날 것이다. 20년간 자유를 경험한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의 통치에 순응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지만, 지방 구석구석까지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기는 힘들다. 그만한 조직력도, 인력도 갖추지 못했다.”
-탈레반이 대외적으론 변화를 공언했다.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아프간 정부가 건재했을 때도 탈레반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젠 권력을 잡았으니 더욱더 자신들 마음대로 하지 않겠나.”
-아프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국제사회가 관심을 많이 가져 줬으면 좋겠다. 난민들을 받아주면 이들이 정착해 본국에 있는 가족을 도울 수 있을 거다. 그래야 아프간에도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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