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200명 훌쩍 넘고, 총 질병자 1000명 넘을 듯
정부도 지자체도 체계적인 분석이나 집계 안 해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8회에 걸쳐 보도한다.
어디에서도 정확한 집계를 찾을 수 없었다. 환경오염이 제기된 지역에서 질병에 걸린 사람, 그리고 사망한 사람들의 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한국일보는 곳곳에 파편적으로 흩어진 수치를 모아봤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공장이나 시설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주민건강영향조사 청원이 이뤄진 8곳의 주민들 중 암과 폐, 갑상선, 호흡기 질환, 우울증 등의 병력을 가진 환자만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최소로 봐도, 암환자만 200명이 훌쩍 넘었다. 건강영향조사 결과가 나온 5곳은 보고서의 수치를 토대로, 조사가 진행 중인 두 곳과 조사 청원을 취하한 한 곳은 주민들 주장을 토대로 취합한 것이다.
우선 주민 지원의 최일선인 지방자치단체조차 무관심했다. 조사 최종 결과가 나온 5개 지자체(대구, 강원 동해, 인천, 전북 익산, 충북 청주)에 주민 건강검진 결과를 정보공개청구했더니, 해당 정보를 갖고 있다고 답변한 곳은 대구와 동해 두 곳뿐이었다.
동해는 매년 40명 안팎의 폐 질환자를 대상으로 환경부 지정 지역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하고 있으며, 대구도 167명 질병 피해 인정자에게 검진을 지원하고 있다.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한 주체인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도 전체 질병 총계나 증상별 분석 등의 체계적인 자료는 없었다. 환경과학원 측은 "지역별 조사 결과 보고서에 게시된 자료 이상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개인정보보호 문제도 있고, 또 건강과 환경 사이의 문제가 특정화되지 않은 경우 모든 병력 실태를 제공하긴 어렵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 피해를 파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10년 새, 암환자만 100여 명(사망자 60명 포함)이 넘고 호흡기·기관지 질환자는 45명이라고 밝혔던 충북 청주 북이면의 경우, 유민채 북이면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이 소각장 주변 19개 마을을 직접 돌면서 조사한 결과다.
북이면 전체로 대상을 넓히면 환자의 수는 더 많아질 수 있다. 실제 환경과학원이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1999~2017년 북이면의 암 발생 현황은 717명(중복 포함)에 달했다. 한 환자가 여러 암에 동시에 걸렸을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큰 차이다.
건강영향조사 과정에서는 주민 건강검진뿐 아니라 국립암센터의 암 발생 자료, 지역의 상병내역도 함께 분석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가 오염과 질병의 연관관계를 거의 인정하지 않다보니 '숨겨진 환자'를 찾고 이들의 치료를 돕는 단계까진 이르지 못한다.
인천 사월마을의 경우, 주민들은 암환자가 20명(사망자 12명)에 달하고 많은 주민이 갑상선, 호흡기 질환과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건강영향조사에서는 암 발생 인원 15명, 정신 심리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보인 수는 35명이었다.
익산 장점마을도 주민대책위원회에서 파악하는 암환자 숫자는 40여 명(사망자 17명 포함)이지만, 환경부가 국립암센터로부터 자료(2017년 12월 기준)를 받아 확인한 암환자는 22명으로 기록됐다. 최재철 장점마을 대책위원장은 "마을에 살다가 나갔거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 등 주민 수에 변동이 있다 보니 숫자가 조금씩 달라서 정확한 피해 인원을 따지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또 장점마을 인근 마을에서도 암환자가 △왈인마을 17명(9명 사망) △장고재마을 12명(4명 사망)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쓰레기매립지 인근의 부산 생곡동에서도 암 사망자만 20여 명에 피부와 호흡기, 안과 질환자는 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건강영향조사를 취하했기 때문에 실제 피해 규모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사가 진행 중인 강원 횡성의 한 마을과 충남 천안 장산리는 각각 암환자가 10명, 12명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 건강검진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정확한 수치를 내기가 어렵다. 동해항의 경우 송정동에만 4,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2015년 건강영향조사 당시 건강검진을 받은 인원은 약 800명에 불과했다. 권오민 송정동 번영회장은 "의무적인 조사가 아니다 보니 본인이 검진을 받고 싶은 사람만 참여했다"면서 "더 많은 수의 주민이 조사를 받았다면 (조사 결과가) 다를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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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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