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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피해에, 농산물 불매에... 두 번 울어야 하는 피해자들

입력
2021.09.06 11:00
수정
2021.09.06 11:1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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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한 마을을 비롯해 다른 지역들도 낙인 피해
배상도 못 받고... 피해자들이 숨어야 하는 상황

[국가가 버린 주민들]<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충북 청주 북이면 장양1리에 주민이 떠난 빈집이 방치돼 있다. 3개 소각로 인근에서만 암 환자 100명(사망 60명)이 나온 지역이다. 오염 지역 주민들은 질병의 두려움과 함께, 낙인 효과로 인해서 농산물도 제대로 팔리지 않아 생계까지 잃기도 한다. 청주=홍인기 기자

충북 청주 북이면 장양1리에 주민이 떠난 빈집이 방치돼 있다. 3개 소각로 인근에서만 암 환자 100명(사망 60명)이 나온 지역이다. 오염 지역 주민들은 질병의 두려움과 함께, 낙인 효과로 인해서 농산물도 제대로 팔리지 않아 생계까지 잃기도 한다. 청주=홍인기 기자

지난달 9일 강원도의 한 작은 마을. 주민들은 낯선 외지인을 한껏 경계했다. 어렵게 대화를 튼 주민들도 모두 손을 내저었다.

“(퇴비공장 얘기는) 안 해요. 한다고 득 볼 거 하나 없어요. TV 나가고 (농산물) 안 팔리는 거 이제 겨우 나아졌어요. 들쑤시지 마요.”

이 마을에선 현재 환경부가 주민건강영향조사를 벌이고 있다. 퇴비공장과 주민 건강 악화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조사다. 2009년 마을에서 약 100m 거리에 퇴비공장이 들어선 후 악취가 진동하고 공장 뒤 산의 소나무가 고사했다. 또 주민 9명이 피부암, 폐암으로 숨지고 1명이 암 투병 중이라는 게 마을의 자체 조사 결과다.

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자꾸 알려야 대책을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 텐데, 주민들은 오히려 쉬쉬하느라 바쁘다. 한국일보는 이곳 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해, 지역명을 공개하지 않는다.


지난달 9일 강원도의 한 퇴비공장. 농협에서 운영한 이 공장은 지난해 상반기에 폐업했지만 출입문이 열린 채 방치돼 있다. 신혜정 기자

지난달 9일 강원도의 한 퇴비공장. 농협에서 운영한 이 공장은 지난해 상반기에 폐업했지만 출입문이 열린 채 방치돼 있다. 신혜정 기자


"아프고 억울하다" 호소... 돌아온 건 낙인과 불매

2019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을 때, 돌아온 건 생계 피해였다. 주민들은 10년간 퇴비 원재료인 가축 분뇨가 발효될 때 나오는 메탄가스와 악취에 시달리면서도 농협이 운영하는 시설이라서 나아질 거란 기대로 민원 제기 외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의 비료공장이 배출한 발암물질 때문에 주민들이 대거 암에 걸렸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불안감이 극에 달했고, 처음으로 퇴비공장 문제를 공론화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한 주민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공론화)했는데 타격이 엄청 컸다”며 “인터넷으로 농산물 파는 사람들은 아예 그냥 다 스톱됐고, 농산물이 원래 나가던 것의 10%도 안 나가서 문제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죄 없는 피해자가 숨는 모순 반복

하루 총합 540여 톤의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로 3개가 들어선 곳, 10년 새 주민 60명이 암으로 사망한 충북 청주 북이면도 사정이 비슷하다. 논농사 밭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5일장에서 냉대를 당한다. 북이면 주민협의체 유민채 사무국장은 "시장에 가면 '어디에서 왔냐' 묻곤 북이면이라고 하면 '소각장 많은 데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결국 농산물을 팔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북이면 장양1리 마을 전경. 집 사이사이까지 논밭이 빽빽히 들어선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지만 마을 반경 2km 내에 소각로가 3개나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충북 청주시 북이면 장양1리 마을 전경. 집 사이사이까지 논밭이 빽빽히 들어선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지만 마을 반경 2km 내에 소각로가 3개나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은 이미 2년 전 비료공장과 주민 암 발병 간 인과관계를 인정받고 환경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농산물 관련 언급은 꺼린다. 장점마을 관계자는 “자식들도 부모한테 농사 짓지 말라고 하고, 안 갖다 먹고 그러는데... 사실 우리가 뭔 죄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소득 감소, '재산 피해'에 포함도 안 돼

소득 감소로 인한 재산 피해가 명백하지만, 하소연할 곳은 아무데도 없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재산 피해를 구제해 주는 정부 제도가 있지만 이들이 겪는 피해는 아예 ‘재산 피해’에 포함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건강·재산 등의 피해를 본사람은 환경부에 ‘환경 오염 피해구제 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피해 구제 급여는 총 5가지(의료비,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유족보상비, 재산피해보상비)인데, 이 중 재산피해보상비는 폭발 사고 등으로 집이나 농기구 등이 파손됐거나 농작물에서 중금속이 검출되는 등의 직간접적인 재산 피해를 봤을 경우 지급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지역이라는 낙인에 의한 농가 소득 감소는 그 피해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접피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에 대해 주민들이 유해물질을 배출한 업체나 관련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장점마을 소송을 대리하는 홍정훈 전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소송에서는 재산 피해를 명확하게 입증해야 하는데 농산물 판매 감소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손해액을 산정하기도 어렵다"며 "소송의 실익도 없이 시간만 지체될 가능성이 커 장점마을도 건강 피해에 대해서만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인 주민들만 속앓이를 할 뿐, 오염지역이라는 낙인에 따른 생계 피해와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다. 청주 북이면 주민협의체 유민채 사무국장의 한숨이 깊었다. "재난이 일어나면 정부에서 특별재난지역 선포도 하고 그러잖아요. 농사 짓던 사람들이 오염 때문에 농작물 안 팔린다고 하면 수매도 하고 명예회복운동도 하고, 그 책임을 정부가 져야지요. (농촌에) 먹거리 생산하라 해놓고는 산업폐기물 공장을 3, 4개 허가를 내주고. 누구 잘못이에요 이게."


청주 북이면 주민협의체 유민채 사무국장이 지난달 29일 청주시 상당구 이정골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청주 북이면 주민협의체 유민채 사무국장이 지난달 29일 청주시 상당구 이정골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남보라 기자
강원= 신혜정 기자
청주= 박주희 기자
익산= 송진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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