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 미 국회의사당 방화
미국 본토는 독립전쟁 이후 단 한 번, 테러가 아닌 군사 공격에 노출됐다.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1803~1815)으로 북새통이던 1812년, 영국과 치른 '1812년 전쟁'(1812~1815) 때였다.
미국은 영국 주력군이 유럽에 묶인 틈을 타 먼저 캐나다를 침공했다. 영국의 대프랑스 해상봉쇄 정책이 미국의 교역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팽창주의 노선의 미국이 노린 건 영국령 캐나다 영토였다. 미군은 1813년 4월 당시 캐나다 수도 요크(현 토론토)를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렸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결판나면서 영국군과 캐나다군의 실질적 반격이 시작됐다. 미국은 1814년 8월 24일 수도 워싱턴D.C.를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영국 해군 중장 조지 코크번(George Cockburn)과 육군 소장 로버트 로스(Robert Ross)가 이끈 군대는 당일 미군의 블라덴스버그 방어선을 돌파하고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수도 워싱턴에 입성,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등 수도의 거의 모든 공공 건물을 방화하고 파괴했다. 특히 국회도서관이 있던 상원 건물은 사실상 전소됐다. 이틀 뒤 영국군은 철수했다.
전쟁은 양측이 '이전 상태 복귀'에 합의하며 1815년 2월 끝맺었다. 상원은 1819년 건물이 복구될 때까지 수도의 한 호텔(Blodgett's Hotel)과 임시 건물(Brick Capitol)에서 직무를 수행했고, 대통령 관저 역시 불타 당시 대통령 메디슨과 후임 제임스 먼로도 2년간 행정동에서 기거해야 했다. 수도를 아예 필라델피아로 이전하자는 안이 제기되기도 했다. 1814년 방화로 그을린 외벽을 흰 페인트로 칠하면서 대통령 관저는 '백악관(White House)'으로 불렸고, 훗날 루스벨트가 그 이름을 공식화했다.
지난 대선 직후 트럼프 낙선에 분노한 폭도들이 의사당 건물을 점거한 직후 미국 일부 언론은 '20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사태'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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