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나빠져 주민들 얼굴이 강시 같았다"
환경부·지자체 검진에서 피해자들 누락
피해 인정받아도 검사비·약제비 찔끔 지원
질병으로 일을 못해도 생계비 지원도 안 돼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②배상은 어디에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한국일보는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8회에 걸쳐 보도한다.
무언가 걸린 듯, 불편한 목을 참아가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정순례(가명ㆍ83)씨. 그는 진폐증 환자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병원비라도 지원해 주는지 물었더니 "없어요. 병원비는 없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1971년 조성돼 불과 3년 전까지 연탄공장들이 남아 있던 대구 동구 안심동, 그는 그곳의 주민이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기침이 나와 “요즘 같은 때는 (코로나19 감염자로 의심받을까 봐) 민망해서 못 나갈” 정도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 정씨는 환경부의 주민건강영향조사에서 오염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의 병이 연탄 비산먼지 때문임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그는 남편도 잃었다. “그 연탄공장 아니었으면 애들 아버지는 아예 안 갔을 긴데… 내가 그게 너무 한스럽고 그래요. 나보다 훨씬 더 (증상이) 심했거든요.” 주민들 청원으로 2014년 조사가 실시됐고, 그보다 불과 몇 년 전 세상을 뜬 남편의 병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살아남아 피해를 인정받은 정씨. 대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시스템이 어떻기에 그는 치료비 한번 받지 못한 것일까.
알음알음 검진? 피해자 상당수 누락
“동네 사람들 얼굴이 아주 말 그대로 강시 같았어요. 폐가 나빠서 숨을 못 쉬니까 다들 피부색이 죽은 거죠.”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하게 된 계기를 묻자 은희진(67) 안심연료단지 비산먼지대책위원장이 회상했다.
그러나 정부 조사에서부터 검진 대상자가 수두룩하게 빠졌다. 조사 당시 총 대상은 5,348명이었다. 안심연료단지 반경 1㎞ 안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40세 이상의 주민을 계산한 숫자다. 그런데 실제 조사에 참여한 인원은 2,980명에 그쳤다.
안심동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계속 살아온 정씨의 딸 A(58)씨도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 “(검사 하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요. 어머니도 이웃 분들을 통해서 겨우 소식을 듣고 검사를 하러 간 거고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다 조사 전 이사를 간 사람들까지 합하면 잠재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추가 피해자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는 그 이후 단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조사 결과는 진폐증 환자 28명,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의심환자가 201명이었다. 진폐증은 광물성 먼지를 많이 흡입해서 폐조직이 굳어지는 질병이다. 광부들 사이에선 ‘죽음의 직업병’이라 부른다. 그만큼 완치가 어렵고, 탄광 같은 폐쇄된 환경에서 오랜 시간 일해야 걸리는 병이다. 하지만 환자 중 8명은 연탄공장에서 근무한 적이 없었다. 그저 공장 옆에서 숨을 쉰 것만으로 보통 사람에겐 보기 드문 병을 얻었다.
대구시는 최종 지원대상을 확정한다며 다시 검진을 했다. 참여한 인원은 고작 217명뿐이었다. 대구시는 당시 “정부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에 대한 추가 검진을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드러난 환자를 재검진한 정도에 그쳤다. 2015년 진폐증 23명, COPD 145명 등 168명에 대한 지원이 확정됐다.
정씨는 대구시 검사를 받지 못해 지원을 못받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런 검사도, 안내도 받은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주민들은 정씨 외에도 지원에서 누락된 환자가 여럿이라고 말한다.
또 대구시가 확정한 168명 중 49명은 지원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대구시는 “검사가 오래돼 정확히 알 수는 없다”며 “환자 중 너무 고령인 분들은 ‘굳이 치료받지 않겠다’며 빠진 걸로 안다”고 답변했다.
수술·입원비도 안 준다
의료비 지급이 확정된 168명에 대한 지원은 충분할까. COPD로 지원을 받는 차석현(가명ㆍ67)씨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정기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다가 B씨를 만났어요. 그분도 COPD인데 저보다 심해서 자식들이 휠체어를 끌고 오더라고요. 상태가 안 좋을 땐 입원도 하는데 그게 다 자기 부담이니까 경제적 부담에 겁이 나서 잘 못 간다고 하더라고요.”
안심동 질병 피해자에게 지원된 의료비는 CTㆍ엑스레이 등 검사비와 약제비 정도에 그친다. 대구시와 대구 동구에 책정 근거를 물었지만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은희진 위원장은 “아마도 예산 문제 때문에 소극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안심동 피해자들은 계속 지원을 받아오긴 했지만 그 비용은 실상 많지 않다. 단순 평균을 따졌을 때 1인당 월 10만 원, 많아야 30만 원 정도이다.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생계피해 보상은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농사를 지었던 차석현씨는 급성 COPD 증상으로 쓰러진 뒤로 일을 하지 못한다. “호흡이 가쁘고 가래가 끓어서 약을 맨날 먹는데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었죠.” 이 같은 피해자가 많지만, 한국일보가 취재한 지자체 중 피해 주민들에게 생계지원이나 보상을 한 경우는 없었다. 농산물 수매 지원(익산 장점마을)이나 마을 축제 지원(동해 송정동) 정도가 관련 조치라 할 수 있다.
현재 오염피해가 발생해도 정부나 지자체가 어떤 조치를 하고 지원을 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 배현주 한국환경정책ㆍ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의 경우 사고가 났으면 그 경우에 따라 보상액이 정해져 있다. 환경오염은 워낙 다양해서 그렇게 종류별로 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카테고리별로 기준만 만들어 놔도 훨씬 빨리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작 5명 받은 정부 구제급여
정부의 환경피해 구제급여가 있긴 한다. 그러나 환경부의 건강영향조사에서 질병 인과관계가 인정된 진폐증 환자조차 이 구제급여 지급을 거부당했다.
대구 안심연료단지 피해자 13명이 구제급여를 신청했으나 이중 5명만 2018~2019년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COPD는 제외하고 발병 원인이 비교적 명확한 진폐증 환자들이었는데도, 환경오염피해구제심의회에서 "거주기간이 길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의료비를 지원받은 5명도 피해자가 이미 지출한 실비 기준이라 예방적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구제급여는 2016년 환경오염 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오염피해구제법) 시행에 따라 뒤늦게 도입됐다. 오염의 원인자가 명확하지 않거나 배상능력이 없을 경우 국가가 구제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구제금은 기업들이 가입한 환경책임보험에서 조성한 환경오염피해 구제 계정으로 마련한다.
재산피해보상비(5,000만 원 한도), 피해 등급별 요양생활수당(매월 14만6,000원~146만3,000원), 장의비(약 280만 원), 유족보상비(약 700만~4,400만 원)도 있지만, 주민 청원 건강영향조사 지역 중 한 곳도 이를 지급 받지 못했다. 환경부는 "건강피해 지원이 더 시급하기 때문에 의료비를 우선 지급했다"고 했다.
전북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도 구제급여 신청 대상이었지만 신청을 포기했다. 마을을 대리하는 홍정훈 전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만약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게 될 경우 지급받은 구제급여를 반환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신청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청주 북이면, 인천 사월마을 등 정부 조사에서 오염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곳은 그나마 구제급여 신청도 불가능하다.
환경보건법은 분명 환경부 장관이 ‘조사 결과에 따라 환경매체와 환경유해인자를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제17조의2 2항)고 정하고 있지만, 환경부는 오염지역 대책 수립과 예산 마련하는 과정에서 모두 빠져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지역을 관리하기 위한 세부계획을 설계하고 시행하려면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데, 기재부에 이를 설명하면 사후관리는 지자체의 몫인데 굳이 정부가 해야 하냐는 이견이 있어 반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4조)는 말은 법전에만 머무르는 걸까.
“안심연료단지가 이전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아직도 고통받는 피해자분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은희진 위원장은 말했다. “건강을 되돌리진 못하더라도, 정부나 지자체가 이분들 남은 여생에 치료라도 편히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른 지역의 지원 상황은
안심동과 함께 유일하게 질병 인과관계를 인정받은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은 1인당 월 건강검진비 90만 원, 의료비 300만 원까지 지원받는다. 첫 해는 원광대가, 이후 2년은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한다. 올해로 지원 3년차라 종료가 임박했지만 지자체는 조례를 개정해서 3년간 사업을 연장하고 금액 상향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이다. 암 환자에 대해서는 사망까지 의료비 지원 방안을 논의중이나,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인천 사월마을, 청주 북이면은 오염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지원도 없다. 200개 폐기물 처리업체가 몰려서 주민들 눈에 쇳가루가 들어가고 '주거 부적합' 지역으로 결론났는데도, 소각로 때문에 암 환자가 100명이나 된다고 호소하는데도 완전히 방치돼 있다.
사월마을은 환경부 예산 1억5,000만 원에 인천시와 인천 서구 예산 각 3,200만 원을 더해 실시한 '사월마을 건강영향조사 사후관리 용역'을 통해 중금속 고농도자와 정신심리검사 이상소견자에 대해 한 차례 정밀 검사를 한 정도가 건강 관련 조치의 전부다. 청주시는 "환경부 조사결과 질병과 오염의 역학적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아 주민의료지원과 기타 생계지원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다만 강원 동해시는 정부 조사에서 질병 상관관계가 인정되지 않았어도 주민 40여 명을 대상으로 2018년부터 최근까지 1인당 월 약 20만 원꼴의 진료·약제비를 지원하고 있다.
건강영향조사가 진행 중인 강원 횡성의 한 마을과 충남 천안 장산리에 대해서도 중앙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임시 대책를 찾기 어려웠다. 두 마을에는 각각 10명, 12명의 암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제적인 건강관리대책이 없다. 조사를 청원했다가 취하한 부산 생곡쓰레기매립장 인근에서도 20명 이상의 암 환자가 발생했다는 주민들 자체 조사가 있었지만, 부산시는 "의료비 등을 지원해달라는 민원 자체가 없어서 지원도 없었다"는 답변을 내놨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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