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올림픽 방송 다양성 존중 못 해"... 보도본부장·스포츠국장 교체

"국제 대형 이벤트 중계 검수 시스템 미비"
조사위 지적

MBC가 지난달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때 내보낸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이미지. 방송 캡처

MBC가 보도본부장과 스포츠국장을 줄줄이 교체했다. 2020 도쿄올림픽 참가국 비하 등 부적절한 중계로 물의를 빚은 데 따른 인사 조처다.

23일 MBC에 따르면 민병우 보도본부장은 도쿄올림픽 방송사고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이날 임원회의에서 밝혔다. 박성제 사장은 사의를 수용했다. MBC는 관리 책임을 물어 송민근 스포츠국장을 교체했다. MBC 올림픽 중계 방송 제작에 관여한 자회사 MBC플러스의 조능희 사장과 황승욱 스포츠 담당 이사에 대해선 경고 조처를 내렸다. 양사는 각각 인사위원회를 개최한 뒤 제작진에 대한 징계를 별도로 진행키로 했다.

MBC는 이날 도쿄올림픽 방송사고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MBC 도쿄올림픽 방송사고 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으로 크게 네 가지를 지적했다. ①인권과 상대 국가 존중 등 공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고 ②방송심의 규정 등 관련 규정과 과거 올림픽 사례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으며 ③국제 대형 이벤트 중계방송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검수 시스템이 미비했고 ④중계방송 제작 준비 일정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해 비윤리적 방송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MBC는 지난달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진 등을 써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과 루마니아 경기에선 상대 팀 자책골을 조롱하는 듯한 자막을 내보내 또 상대국 비하로 잡음을 냈다.

조사위는 "개막식에서 참가국을 소개하는 과정 중 부적절한 안내를 한 것은 방송 강령에 명시된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른 문화를 모독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탓"이라고 꼬집었다.

MBC가 2008 베이징올림픽 때 내보낸 개막식 중계 화면. 방송 캡처

MBC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중계방송에서도 비슷한 방송사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도쿄올림픽 방송사고를 둘러싸고 MBC에 비판이 거셌던 배경이다.

당시 MBC는 케이맨제도를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 회피지로 유명'으로, 차드에 대해선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표현해 물의를 빚었다. 방심위는 MBC에 국가 비하 자막 등을 이유로 주의 조처했다. 조사위는 "스포츠와 같은 특정 프로그램의 제작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방송 준비에 혼선이 있었던 게 사고 재발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MBC는 "조사위의 권고에 따라 개인의 판단 또는 실수로 부적절한 자막과 사진, 자료화면 등이 방송되지 않도록 스포츠 제작 가이드라인과 검수시스템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콘텐츠 신뢰 회복을 위해 전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공공성 강화 위원회'를 설치, 제작시스템 혁신에 착수한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