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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 흉내내는 로봇

입력
2021.08.26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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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고재현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카멜레온 ⓒ게티이미지뱅크

카멜레온 ⓒ게티이미지뱅크


올여름은 유난히 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었던 계절이었다. 비 온 후 대기를 채운 물방울들이 햇빛을 반사하고 굴절시켜 퍼뜨린 무지갯빛은 파랑과 흰색의 단조로운 대비로 채워진 하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창공을 향해 치솟은 쌍무지개의 위용에 감탄하며 다채로운 색깔을 지각하는 존재로 인간이 진화해 왔다는 사실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색상이 무지개의 전유물은 아니다. 각종 갑각류나 새, 해양 생물들 중엔 무지갯빛이나 채도가 높은 색으로 치장한 종들이 많다. 이 얘기에 모르포 나비의 짙푸른 날개, 딱정벌레의 등껍질, 혹은 공작의 날개나 전복의 껍질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하나 색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동물이 바로 색상 변신의 귀재 카멜레온이다.

생물이 색을 띠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색소 세포가 빛의 특정 색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하는 것이다. 가령 녹색 빛을 흡수하는 색소를 가진 꽃잎에 햇빛이 닿으면 파랑과 빨강 빛만 반사되므로 그 잎은 자주색을 띤다. 사물들의 색은 보통 이 방식으로 구현된다. 다른 방법은 표피에 있는 미세한 구조를 이용해 색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구조색’이라 부른다. 작은 구조물들이 색을 만든다니, 이건 무슨 의미일까?

주변에서 구조색을 보이는 친숙한 물체로는 CD나 DVD가 있다. 이들 저장장치의 표면에는 1㎜ 길이에 무려 수백 혹은 천 개 이상의 미세한 홈들이 새겨져 있다. 방파제 사이 좁은 물길을 지난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가듯이 각 홈에 입사된 빛은 반사되며 사방으로 퍼진다. 수백 개의 홈에서 반사되어 진행하는 빛들이 만나면 색상에 따라 특정 방향으로 강해진다. 두 파도가 만날 때 파도의 산과 산이 만나서 더 높은 파도가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따라서 CD를 조명 아래 비추어 보면 각도에 따라 다양한 무지개색을 보게 된다. 게다가 특정 색이 강해지는 각도는 홈의 밀집도에 따라 달라진다. CD와 DVD가 만드는 무지갯빛의 패턴이 다른 건 두 저장장치의 홈의 간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카멜레온 로봇이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의 색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는 모습. 서울대 제공

카멜레온 로봇이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의 색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는 모습. 서울대 제공


카멜레온이 보이는 변화무쌍한 색깔들은 오랫동안 색소 세포들의 응집이나 분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몇 년 전 발표된 연구 결과는 카멜레온의 피부 속 세포질에 나노 결정이 주기적으로 박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경쟁 상대나 이성을 만난 카멜레온은 흥분 상태에서 피부를 확장하며 나노 결정 사이 간격을 늘린다. CD의 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나노 결정은 간격이 달라지면 빛을 반사해 퍼뜨리는 색상의 패턴이 변하며 상대방 눈에 보이는 색상이 바뀌게 된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다채로운 나노 구조와 기능들은 과학자에겐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자 창조적 모방의 대상이 된다. 최근 국내 한 연구진은 카멜레온의 기능을 능숙하게 흉내낸 로봇을 발표한 바 있다. 연구진은 로봇의 피부에 액정 분자가 나선형으로 꼬인 얇은 층을 형성하고 그 아래 온도를 바꾸기 위한 열선을 넣었다. 온도는 액정의 꼬인 주기를 결정하고 이 주기는 반사되는 색상을 결정한다. 온도가 색을 바꾸는 것이다. 개발된 로봇은 센서로 주변 색을 감지하며 실시간으로 피부 색을 바꾸어 나갔다. 이런 기술은 군사적 위장술뿐 아니라 예술이나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구조와 기능을 연구해 응용하려는 분야가 생체 모방 분야다. 21세기 들어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 이 분야에선 자연 속 다양한 구조와 패턴이 연구되면서 새로운 응용 분야를 창출하고 있다. 혹자는 언젠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행어를 퍼뜨렸지만 과학자에겐 오늘날이야말로 자연은 넓고 할 일은 많은 시대다. 자연이 새로운 지식과 지혜의 보고로 떠오르고 있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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