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꿈틀대는 아시안혐오, 위기의 '치노'들

입력
2021.08.29 10:00
25면
0 0
민원정
민원정칠레 가톨릭대 교수

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곳. 10여 년 전에는 한국도 베네수엘라 모델을 따라야 한다더니 요즘엔 베네수엘라 꼴 날까봐 걱정들이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가 중남미의 제대로 된 꼴을 보여 준다.


세비체 ⓒ게티이미지뱅크

세비체 ⓒ게티이미지뱅크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페루 대선에서 패배했다. 부정부패와 인권침해로 25년 형을 선고받은 그녀의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후지모리와 같은 일본 이민의 아메리카 대륙 이민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1899~1908년, 최초의 남미 농업 이민자들이 페루와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제는 페루와 칠레의 전통 음식이 된 '세비체'(양념한 생선회)는 페루 '니케이'(퓨전 일식)의 유산이다.

현지인들은 이들을 중국인과 동일시했다. 스페인은 16세기에 당시 자국의 식민지이던 필리핀에서 '필리핀 노예'를 중남미로 데려간 바 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이들 포함, 모든 아시아인을 'Chino'(치노, 중국인)라고 불렀다. 중남미에서는 '인디오 중국인'이라고도 칭했다. 1847~1874년, 약 23만 명의 '중국인 노예'가 쿠바와 페루, 멕시코 등으로 건너갔고 이들 대부분은 아프리카 노예들과 함께 담배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영화 '애니깽'(1996)에는 1905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노예매매로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간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페루에 있던 중국인 노예들은 19세기 말 칠레와 페루·볼리비아 사이에 벌어진 태평양 전쟁 당시 노예 해방을 조건으로 칠레군을 도왔고 전쟁 후 칠레로 이주했다. 본격적인 한국 이민은 이보다 훨씬 후인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영화 'JSA'(2000)에서 소피 장의 아버지처럼 한국전쟁 후 남미로 건너간 전쟁포로도 있지만, 극소수다. 물론 한국 사람도 대부분 '치노' 취급을 받는다.


페루에 정착한 중국인 노예 치노.

페루에 정착한 중국인 노예 치노.


1990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별명도 'El Chino'(엘 치노)였다. 중남미에서 '치노'는 경멸적인 표현이기도, 문맥에 따라 애정표현의 방법이기도 하다. 후지모리는 '엘 치노'를 국민의 사랑이라고 받아들인다고 말하곤 했다. 어쨌든 '치노'들은 일을 잘했다. 너무 잘해서 현지 노동자들은 물론 흑인 노예들도 이들을 경계할 정도였다.

20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는 중남미의 주요 교역대상으로 부상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경제 상황에 따라 중남미 경제도 춤을 출 정도다. 한국산, 중국산, 일본산 제품이 중남미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한 지 오래다. '치노'들은 심지어 만화와 애니메이션, 케이팝을 앞세워 대중문화까지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아시아 대중문화를 '치노' 문화로 치고 심지어 팬들까지 '치노' 취급하기도 한다. 아시아 시장은 중요하지만 '치노'들의 대중문화까지 두 팔 벌려 반기기는 아직 무리다.

얄미운 '치노'들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까지 몰고 왔다. '치노'들은 개, 고양이, 원숭이만 먹는 줄 알았더니 박쥐까지 먹는다는 영상이 인터넷에 떠돈다. 칠레와 콜롬비아의 TV 프로그램에서는 BTS를 빗대어 아시아인들이 코로나19 감염의 주범이라는 편견을 드러내는 방송을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물론 중국에서 보내주는 백신은 환영이다.

중남미에서는 찢어진 눈, 노란 피부 등의 말에 노여워하면 농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뼛속 깊은 무감각한 인종 차별은 코로나19로 더 은밀하고 잔인해졌다. 싸늘한 시선과 곁눈질, 따돌림, 인터넷을 떠도는 해괴한 유언비어는 폭력으로 드러나는 아시아 혐오 범죄 이상의 공포감을 주는 잠재적 폭탄이다. 아시아의 필요성과 '치노'에 대한 편견이 어긋나는 중남미.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중남미와의 심리적 거리부터 좁히라는 시급한 과제를 던져줬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규장각펠로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