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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최초의 여성·청년·이주민 후보 고은영의 '청춘 선거'가 남긴 것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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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최초의 여성·청년·이주민 후보 고은영의 '청춘 선거'가 남긴 것 [인터뷰]

입력
2021.08.30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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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고은영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최초의 여성·청년·이주민이다. 아이 엠 제공

1985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고은영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최초의 여성·청년·이주민이다. 아이 엠 제공

제주엔 '괸당' 문화라는 게 있다.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섬 특유의 정서다. 그런 제주에서, '뭍에서 온 젊은 여자'가 도지사를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고은영(당시 33세)씨 얘기다. 제주 최초의 여성이자 이주민인 청년 후보의 이 무모한 도전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안다. 많은 이들에겐 '작은 승리'의 기억으로도 남아 있다.

그의 도전은 세상을 얼마나 바꿨을까. 질 것을 알면서도 선거에 뛰어든 그 이유를 짐작해 보고 싶었다. 3일 막을 올리는 전북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 선거'는 그 단초를 제공한다.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상을 관찰하는 다이렉트 시네마 기법을 지향하는 민환기 감독의 이 작품은 고은영과 제주 녹색당의 선거운동 과정을 초밀착해 가감없이 담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 선거'는 고은영의 지방선거 도전기를 통해 우리 시대 다양한 청춘들의 희망과 연대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목도한다. 아이 엠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 선거'는 고은영의 지방선거 도전기를 통해 우리 시대 다양한 청춘들의 희망과 연대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목도한다. 아이 엠 제공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했다는 한 20대 여성이 '은영님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순간 울컥했어요." 최근 화상으로 만난 고씨는 "우리의 도전이 제주사회에 작은 파도를 만들면서 새 길을 내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돌아봤다. 선거 한 달 전 1% 지지율로 시작한 그는 일약 '제주 정치의 아이돌'로 회자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제1야당 후보를 꺾고, 득표율 3.54%(정당 지지율 4.87%)를 기록했다.

"소수정당이고, 의석이 없으면 아무도 대의하지 않는 걸까." 소수정당의 정치 신예였던 그가 제주에 남긴 여진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그는 5명의 도지사 후보 중 유일하게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개발 위주의 양적 관광이 제주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도민들이 제2공항 반대 목소리를 더 크게 내도 좋다는 안전망을 저희가 깔아드린 거죠. 그때 녹색당이 잘해 줘서 실제로 제2공항 건설이 몇 년간 멈춘 상황입니다." 그는 "잘하는 정당은 시민의 목소리를 사회에 발신하는 역할을 해 왔다"며 "의석 여부와 상관 없이 사회의 갈등 조정자, 중재자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난개발 막는 여성 청년 도지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고은영은 자격을 묻는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아이 엠 제공

'난개발 막는 여성 청년 도지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고은영은 자격을 묻는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아이 엠 제공

'철거민의 딸', 'IMF 키즈'였던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인턴, 명품 홍보 등 "자본의 예쁜 주구 노릇"을 하다 2014년 제주행을 감행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못 살 것 같았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데 가서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낌없이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내려왔죠." 그러나 여행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맞닥뜨린 제주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제주를 사랑했던 그는 제주를 걱정하다 끝내 선거에 나서게 된다.

선거를 치르면서 그는 자격을 묻는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완전 어린 것 같은데" "뭐를 등쳐 먹으려고"라는 무연고 청년에 대한 편견에다 여성에 대한 배척까지 삼중고였다. 제주에선 등산객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한라산신제와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해신제)를 지낸다. 오랜 전통이다. 하지만 여성은 피를 흘리는 불경한 존재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폐경을 한 이후만 제사 참여가 가능하단다. 그래서 그는 "한라산신제와 해신제를 집전하는 최초의 여성 제사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더 크게 떠들어댔다.

고은영은 2018년 제주도지사 후보 중 유일하게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도민의 지지를 얻었다. 아이 엠 제공

고은영은 2018년 제주도지사 후보 중 유일하게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도민의 지지를 얻었다. 아이 엠 제공

"50~60대 여성에게서 반응이 가장 빨리, 크게 왔어요. 선거가 끝나고도 길거리를 걷다 어머님들과 악수하는 게 흔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죠." 그는 "제주는 으레 여성의 목소리가 큰 곳으로 오인되지만 정작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은 낮다"며 "소수자성을 가진 플레이어에 자신을 투영한 유권자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두 아이의 엄마 오수경과 지금은 고인이 된 트랜스젠더 김기홍이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그와 함께 뛰었다. 그에게 정치란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이다.

2020년 4·15 총선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그는 이후 녹색당을 탈당하고 후원회원으로 남은 상태다. 하지만 청년 정치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우리는 사변을 겪지 않은 세대예요. 적대하기보다 소통하고 협치하는 방식에 익숙하고 능숙하죠. 지금은 뭐가 옳고 그른지보다는 함께 손잡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청년들의 소통 방식과 태도는 더 중요해질 거예요." 그래서 "청년 정치의 저변이 더 넓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는 "기성 정당에서 청년 공천을 받는 걸 폄훼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정당이 당내 청년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작업 없이 청년정치를 얘기하는 건 '청년팔이'"라고 꼬집었다.

"청년의 기초의원 출마를 돕는 정치 스타트업도 생기고 있잖아요. 결국 더 많은 청년이 정치를 해야 해요. 그래서 '민주화 시대', '산업화 시대'처럼 우리 스스로 쟁취한 시대의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젊은 정치인의 행동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거라 생각합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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