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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테러 위협' 속 동상이몽 美-탈레반... 적과의 동침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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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테러 위협' 속 동상이몽 美-탈레반... 적과의 동침 나서나

입력
2021.08.29 21: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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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령관 "양측 '공동의 목적' 공유" 언급
IS-K '2차 테러' 위협, 미군 추가보복 가능성
탈레반 "美서 공항관문 3곳 통제권 넘겨받아"
"IS-K 대원 6명 체포"... 현지 통제능력 강조도?
美는 안전한 철수 ·탈레반은 '정상국가' 희망
관건은 "탈레반 믿을 수 있느냐"... 불안 여전

2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출입문에서 탈레반 특수부대 '바드리 313 대대'가 경계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2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출입문에서 탈레반 특수부대 '바드리 313 대대'가 경계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총구를 겨눴던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의도치 않게 두 손을 맞잡아야 할 상황에 처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 아프간 지부인 호라산(IS-K)의 테러가 현실화하면서 ‘적과의 동침’이 불가피해졌고,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로 바꿔야 할 판이다. 물론 미국은 ‘안전한 철수’를, 탈레반은 ‘정상국가 인정’을 염두에 둔 동상이몽이다. 그러나 당면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불편한 파트너십을 맺어야 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동의 역학 관계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몇 주 전만 해도 미군의 표적이었던 탈레반이 하룻밤 사이 미군을 보호하는 외부 지대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31일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미군은 보안의 상당 부분을 탈레반에 의존하고 있다. 전날부터 탈레반 특수부대 ‘바드리 313 대대’가 미군과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 경비를 나눠 서고, 미군 요청에 따라 특정 도로를 폐쇄했을 정도다. 이날 탈레반은 “미군이 일부 구역을 제외하곤, 공항 군사구역에 들어가는 3개 관문 통제권을 인계했다”고도 밝혔다.

미군의 중동 작전을 책임지는 프랭크 매켄지 중부사령관도 “탈레반을 (현지의)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양측은 이제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흘 전만 해도 양측이 “대피 작전 방해 시엔 압도적 무력에 직면할 것”(미국) “철군 시한을 안 지키면 상응하는 결과를 맛볼 것”(탈레반)이라며 날 선 경고를 주고받은 점에 비춰, 이례적인 ‘협력’ 메시지다.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을 입은 시민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을 입은 시민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어색한 동거’ 뒤에는 IS-K 위협이 있다. 26일 카불 공항 출입문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 13명과 아프간인 약 170명이 숨졌다. 이튿날 미군의 드론 보복 공격으로 IS-K 고위 관계자 2명도 사망했다. IS-K의 추가 테러 위협, 미군의 추가 보복 가능성도 제기돼 현지는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카불 주재 미 대사관은 이날도 “특정적이고 구체적인 위협이 존재한다”며 공항 인근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불안은 날로 커지지만, 현재의 미군 규모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탈레반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WSJ는 “미국은 안전을 위해 20년간 싸웠던 무장 세력을 파트너로 의지한다”며 “미군 2,465명의 목숨을 앗아간 탈레반과의 전쟁에 참여한 이들에게 카불의 새로운 현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전략적 계산’이라는 분석도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아프간 특별대표 대행을 지낸 로렐 밀러는 “철수 후에도 남은 조력자들을 원활히 대피시키려면 탈레반과의 실용적인 거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탈레반은 친구도, 신뢰하는 집단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들이 아프간을 통제하는 게 현실이고, 대피 작전 수행을 위해선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8일 탈레반 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순찰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28일 탈레반 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순찰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 역시 미국이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을 돕는 게 달갑지 않지만, IS-K의 영향력 확대는 아프간 통치에 나서야 할 탈레반한테도 도전이다. 테러가 계속될 경우, 미군의 보복 공격 및 주둔 연장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부담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정상국가 인정 △해외 원조 중단 저지 등의 현실적 과제를 위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서방과의 협력 고리를 만들고 정국을 안정시키려면 미국과의 일정 정도 협력은 필수적이다.

실제 탈레반은 미국의 IS-K 보복 공습을 “명백한 아프간 영토 공격”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국과 외교 관계를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심지어 이날 IS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6명(말레이시아인 2명 포함)을 체포하며 통제 능력을 강조했다. 미국과 탈레반이 적대관계를 잠시 접으면서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나선 셈이다. USA투데이는 “’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오랜 정치적 격언을 보여 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불안과 우려로 가득하다. 핵심은 “탈레반을 과연 믿을 수 있느냐”다. 미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만 부국장은 “미국은 탈레반을 대(對)테러 파트너로 보려는 유혹에 빠졌다”며 “이 전략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탈레반 내 강경 세력이 미국과의 협력에 불만을 품고 IS-K로 이탈할 경우, 미국 안보엔 더 큰 위협이라는 뜻이다. 밥 메넨데스 미 상원 외교위원장도 “미국 안보와 관련, 탈레반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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