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핵 도발
김정은 북한 정권이 2년 6개월 만에 ‘영변 핵시설’을 다시 돌리기 시작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30일 관련 사실을 적시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 내용이 상세히 공개됐지만, 북한은 아직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원자로 재가동의 종착역은 플루토늄 추출. 한마디로 핵무기를 더 갖겠다는 것이다. 핵이라는 무력 수단만 놓고 보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들어 최고 수위의 도발이다.
북한이 올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감행한 군사적 도발은 3월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개량형’ 발사가 유일했다. 당시 북한은 탄두 중량을 2.5톤으로 늘려 전술핵 탑재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단거리 미사일을 택해 다분히 미국을 떠보겠다는 인상을 줬다. 그러나 지난한 대북 제재의 시발점인 핵 카드를 전면에 들고 나오면서 앞으로 영변 핵시설은 북미 협상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영변 핵시설' 북미 협상카드로 재부상하나
북한의 1차 목적은 미국의 새 행정부를 향해 최고 위협 수단인 핵을 앞세워 무력 능력치를 각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 뒤 북한의 핵능력을 직접 맞닥뜨린 적이 없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뇌리에 북핵 문제가 잊혀지지 않도록 명징한 신호를 보냈다는 얘기다.
영변 핵시설은 궁극적으로 북미 협상 전략과 맞닿아 있다. 전례도 있다. 북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회담 때 영변 설비들을 거래 매물로 내놨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민생 관련 대북제재 5건을 해제하는 대가로 영변 핵시설 단지 폐쇄를 제안했지만, 미국이 영변 외에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하면서 빈 손 합의로 막을 내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하노이 회담 이후 중단된 북미협상 재개를 앞두고 영변 핵시설이 여전히 유효한 대미 협상카드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노림수”라고 풀이했다.
"美와 조건 없는 대화는 안 하겠다"
그렇다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를 내걸고 당장 대화 테이블에 복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이 줄곧 고수해 온 협상 원칙인 ‘조건 없는 대화’에응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좀 더 명확히 했다는 함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제재 해제 등이 전제가 돼야 미국과 얼굴을 맞댈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대화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 식대로 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7월 초는 리선권 북한 외무상이 “미국과 무의미한 접촉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담화(6월 23일)를 밝힌 직후다. 리 외무상은 4박 5일 방한 일정을 마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출국에 맞춰 이런 메시지를 냈다. 김 대표는 당시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는 우리 제안에 북한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길 희망한다”며 무조건적 만남을 거듭 강조했다.
게다가 영변 핵시설은 원칙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을 움직일 만한 선택지로는 무게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국제사회는 영변 핵시설 폐기 약속을 수차례 번복한 북한의 과거를 잘 알고 있다. 협상 재개가 아닌 “미국이 먼저 양보하라”는 외교적 압박 이상의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만큼 북미 대화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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