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악습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D.P. 원작자 김보통
달라진 게 없는 軍에 던진 김 작가의 묵직한 질문
"군대, 이제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운다"
"내 고증 엉망" 드라마보다 심각한 군의 현실
군대 내 폭력·성추행 등 가혹행위와 부조리를 사실감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의 원작자 김보통 작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관련 기사 ☞ "다시 군대간 것 같았다" 탈영병 잡는 'D.P.'에 열광하는 이유)
김 작가는 D.P.가 공개된 지난달 27일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D.P. 관련 글을 연일 올리고 있다. '요즘 군대'란 표현을 자주 쓰며 자기 작품과 2020년대 군대를 비교하는 내용이다. 심지어 "고증이 엉망"이란 자기성찰까지 했다. 치밀한 고증 덕에 군필자들이 '자기의 경험담을 보는 것 같다'며 열광하는 반응과는 딴판이다.
그러나 김 작가가 작품이 인기 가도를 달리는데도 자기비판을 한 건 다 이유가 있다. D.P.에서 다뤄진 이야기들이 '옛날 군대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 아니냐'는 일부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하려는 취지다.
군대에서는 아직도 상명하복 문화와 각종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고, 견디다 못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현실이 D.P.란 가상 세계보다 더 잔혹하고 고통스럽다는 외침이다.
"군대와 외로운 싸움 하는 분들에게 힘 보탤 수 있길"
김 작가는 지난달 31일 독자에게 받은 장문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전주에 사는 군 유족이라고 소개한 독자는 2012년 스물세 살이란 나이에 군 내 폭행으로 하사였던 남편이 사망했다고 했다.
독자는 "당시 4개월과 20개월이었던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국방부와 지금까지도 소송하며 싸우고 있다"며 "겨우겨우 재조사해서 순직 되고 보훈처 혜택도 받았지만, 군인순직연금 소송 중 판사가 재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아 1심에서 패소해 엄청나게 좌절하고 항소를 준비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러던 중 디피라는 작품을 알게 됐고, 우리 내용 같아서 볼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 소송을 준비하면서 마음을 다시 다잡아보고자 1화를 봤다"며 '참 힘들게 봤지만 그래도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 군과 싸우고 있지만 좌절감에 포기하려고 했던 순간, D.P.를 보게 돼 용기를 얻었다는 독자. 독자가 이같이 반응한 건 D.P.가 군대 내 부조리가 왜 사라지지 않는지, 군대 병영문화가 정말 달라졌는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계속되는 군 가혹행위 사실감 있게 묘사
D.P.는 탈영병을 체포하는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Deserter Pursuit)가 탈영병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누적 조회 수 1,000만 뷰를 기록한 웹툰 'D.P. 개의 날'(2015)이 원작으로,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태국 넷플릭스에서도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D.P.는 과거에나 있을 법한 잔인한 가혹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병폐가 얼마나 심한지 꼬집는다. 뾰족한 못이 막힌 벽에 밀쳐 후임병의 뒤통수에 피를 낸다. 하의를 벗게 한 뒤 음모를 태우고, 고참이 보는 앞에서 자위하도록 강요한다. 후임병의 관물대를 뒤져 멋대로 편지를 꺼내 읽고, 가난한 가정사를 희롱한다. 이 밖에 방독면 씌우고 안에 물 붓기, 얼굴에 살충제 뿌리기, 후임병 입에 가래침 뱉기 등 군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김 작가가 이처럼 묘사할 수 있었던 건 D.P. 출신으로, 탈영한 병사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가깝게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가 '요즘 군대는 다르다'는 말을 반박하며 거듭 의문을 제기하는 건, 자신이 군 생활을 할 때, 원작을 쓸 때, 드라마가 방영되는 현 시점까지 군 내 부조리는 달라진 게 없다는 항변이다.
김 작가가 독자의 메시지에 단 답변을 보면 요즘 군대를 꼬집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독자의 메시지에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길.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다짐했다. 디피가 군 내 부조리로 아직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현재 진행형'인 군의 악습을 끊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2주 전에도 군에서 성추행으로 사망…내 고증 엉망이다"
김 작가는 같은 날 "디피 고증 엉망"이라며 군대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들의 기사 여러 개를 공유했다. 2월 입대한 지 6개월 만에 하늘로 간 공군 병사, 같은 달 막사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교육생, 7월 통영의 한 숙박업소에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김모 일병, 8월 부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해 고통에 시달린 하사 등이다.
그러면서 "요즘 군대에선 디피에 나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라며 군 내 부조리가 여전하다고 성토했다. 김 작가는 지난달 30일에는 "디피가 말이 되냐, 안 되냐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2주 전에도 말이 안 되는 이유로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군과 해군의 성추행 피해자가 사망한 기사를 공유하면서 말이다.
군 악습 할 얘기 많다며 시즌2 만들고 싶다는 김 작가
김 작가는 페이스북에 요즘 군대 못지않게 '시즌 2'란 표현을 자주 올린다. 군 악습에 대해 아직 할 얘기가 많기에 D.P.가 세상에 더 알려지길 바라는 심정에서다. 그는 지난달 29일 "사람들이 디피를 많이 보면 좋겠다. 그래서 군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지 알았으면 한다"며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며 둔감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김 작가는 넷플릭스가 D.P.를 공개한 지난달 27일 "아직 할 얘기가 많으니 시즌 2가 나올 수 있게 많이들 봐주세요"라고 적었고, 이튿날인 지난달 28일에는 "긴급속보. 넷플릭스 1위 500번 하면 시즌 2 결정된대요(그냥 내 생각이다)"며 시청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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