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애수에 젖은 미소' D♭ 장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D♭ 장조는 오묘한 색깔이다. 일찍이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조성을 "어스름하다(Dusky)"고 표현했다. 어둑하고 탁한 감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조성은 장조임에도 애수를 자아내 언뜻 단조 분위기가 나타난다. 웃고 있지만 눈물을 참은 듯한 미소다.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슬픔이 녹아 있는 장조다.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희귀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조성의 대표 주자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들 수 있다. 교향곡 자체는 E 단조의 곡이지만, 가장 유명한 2악장이 D♭ 장조로 쓰였다. 2악장 주제는 '꿈속의 고향'이라는 별도의 제목으로 연주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선율이다.
장재진 기자(장): '신세계로부터'는 보헤미아 출신의 드보르작이 1892년 미국 뉴욕 내셔널 음악원의 원장으로 부임한 뒤 이듬해에 쓴 곡이다. 드보르작은 신대륙의 음악세계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흑인 영가 등을 공부했는데, 교향곡 9번의 악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2악장에서 흑인 노예들의 애환과 작곡가의 고향에 대한 향수 등이 드러나는 듯하다. 울산시립교향악단이 다음 달 8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지: 피아노곡들로 가보자. 베트남 영화 '그린 파파야의 향기'(1993)에서 주인공 무이는 자신이 남몰래 사모하던 피아니스트 쿠엔의 집에서 하녀로 일한다. 하지만 쿠엔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무이가 쿠엔의 약혼녀가 벗어둔 금빛 샌들을 발끝으로 살짝 건드리는 순간, 정원의 새소리를 배경으로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온다. D♭ 장조로 쓰인 이 곡은 신비롭고 아련하다. 영화에서는 금빛 샌들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주인공의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짝사랑을 묘사한다.
장: 아름답지만 우수에 젖은 감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곡이 또 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중 18번째 변주곡이다. 작곡가는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중 24번의 주제를 모티브로 24개 변주곡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18번째 변주곡 '안단테 칸타빌레'는 서정성이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D♭ 장조로 쓰인 이 선율은 영화나 드라마, TV광고에 두루 쓰였다.
지: 팝송에서는 스티비 원더의 명곡 '아이 저스트 콜 투 세이 아이 러브 유(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이 조성으로 만들어졌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기념할 새해가 없고 봄이 와도 부를 노래가 없는, 평범한 날들'이라는 가사는 다소 울적해 보이기도 하다. 세레나데치고는 독특한 감성이다.
장: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B♭ 단조의 곡이다. 하지만 이 협주곡의 가장 유명한 대목인 도입부는 B♭ 단조의 관계조인 D♭ 장조다. 우렁찬 호른의 포효 뒤로 흘러나오는 피아노의 화음들은 감미로우면서 강한 건반 터치로 격정을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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