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미디어의 책임을 강조한 '가락이'의 호소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저는 2014년 부산 가락대로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구조된 진도믹스종 '가락이'(7세?수컷)입니다. 지금은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 보호소인 '온센터'에 살고 있는 '가람이'(8~10세 추정?수컷)를 구조하러 온 사람의 눈에 띄어 극적으로 보호소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조자 집에 눌러 앉은 지 7년째입니다. 7년 전만 해도 밖에 나가면 "집 안에서 키우냐"는 얘길 들었는데 이젠 믹스견에 대한 이미지도 바뀌어서인지 "예쁘다"는 말도 곧잘 듣습니다. 물론 스피츠나 시바견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간혹 계시더군요.
최근 유기견 출신인 제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개취존중 여행배틀-펫키지'(이하 '펫키지')에서 출연자 중 한 명인 김희철씨가 "진짜 솔직한 말로 강아지 선생님들,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한테 유기견을 절대 추천 안 한다"라며 "왜냐면 유기견들이 한번 상처를 받아서 사람한테 적응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라고 발언한 겁니다. 방송이 나가자 시청자들은 김씨의 발언이 유기견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이어 동물권행동단체 카라,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도 잇따라 우려의 의견을 냈는데요.
논란이 확산되자 JTBC는 가장 먼저 시청자 게시판을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이후 5일 만에 입장문을 내고 "해당 발언은 반려견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는 신중함과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방송에 담은 것"이라며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오해의 소지가 생겨 유감스럽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사자 김희철씨는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강아지들은 똑똑해서 상처나 트라우마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라며 "유기견이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할 수도 있다. 충분한 지식과 함께 전문가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유기견이 또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방송사와 김씨의 입장 표명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유기견 가운데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친구들도 일부 있지만 다 그런 것도 아닙니다. 초보 반려인이지만 유기견을 입양해 잘 지내는 사례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요. 또 해당 방송에는 택배기사 김상우씨가 데리고 다니면서 유명해진 유기견 출신 '경태'와 번식장에서 구조해 경태와 함께 살고 있는 '태희'도 등장했는데요. 잘살고 있는 경태와 태희를 화면에 비추면서 "처음으로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절대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발언과 자막은 다소 맞지 않아 보입니다.
카라는 SNS에 "유기동물은 제각기 개별성을 가진 생명으로서 성격도, 건강상태도 모두 다르다"라며 "'유기견은~하다'라고 재단하는 것 자체가 동물을 대상화하고 물건과 같이 취급함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동자연 활동가도 기고를 통해 "유기견은 문제가 있고 어렵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유기동물이나 구조동물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선입견이다"라며 "'유기견'을 특정하여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면 대안으로 펫숍 구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우려를 제기하는 지점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동물을 다루는 미디어의 영향력은 큽니다.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나왔던 그레이트 피레니즈종 '상근이', 채널A의 예능프로그램 '개밥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웰시코기 삼둥이 '대, 중, 소', tvN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의 장모치와와종 '산체'가 방송에 충분한 정보 없이 등장하면서 세 품종의 인기가 바짝 올랐다 실제 유기동물 증가로 이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카라는 "대중의 인식이 방송을 보고 만들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방송과 패널의 힘은 강하다"라며 "출연진이 오해를 살 발언을 하거나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발언을 한다면 제작진은 현장에서 멘트를 보완해야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송출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동자연도 "편집과 제작 과정에서 과오가 크다"라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고려할 때 필요한 건 유기견 추천 여부가 아니라 배움과 고민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며 미디어가 보다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동물 이슈를 다뤄줄 것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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