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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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집은 여자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다.
Home, the most dangerous place for women.
유엔 산하 기관(UNODC)이 펴낸 '2018 여성의 젠더 기반 살해에 관한 보고서' 中
Her View : 여성의 관점
<21> 죽은 여자들을 애도하며 (9월 2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만일 조금 강렬한 뉴스레터의 제목에 거부감을 느낀 분이 계시다면 미리 양해를 구해요. 하지만 최근 잇따른 여성들의 사망 소식에 착잡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늘 허스토리는 8월 한 달 동안 보도된, 세상을 떠난 여성들에 대한 부고로 내용을 채웠어요. 다만, 보통의 부고 기사처럼 망자가 누구인지에 주목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어떻게' 죽었는지에 집중합니다. 누군가는 죽임 당했고, 누군가는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형태의 죽음은 여성 혐오 사회가 만들어낸 '가해의 결과'였습니다.
■ 8월 30일 : 77세 여성 A씨
대구의 한 주택에서 70대 여성 노인이 흉기로 온몸 곳곳이 찔린 채 사망했습니다. 그를 참혹하게 죽인 이들은 고등학생 손자 두 명이었습니다. 경찰에 긴급체포된 이들은 "평소 할머니 잔소리가 심해서 그랬다"고 진술한 뒤, 구속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 → 관련 기사 : https://url.kr/ml4ohp )
■ 8월 26일, 29일 : 40대 여성 B씨, 50대 여성 C씨
우리는 이 여성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누구이고, 어떻게 가해 남성을 알게 되었는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출소한 지 넉 달도 안 된 성범죄자 강모(56)씨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강씨는 B씨를 자신의 집에서 살해한 뒤,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습니다. 이후 C씨를 차량에서 살해합니다. 가해자는 전과 14범(성폭력 2건 포함)이었습니다. 교정 시설에 수용된 기간이 27년에 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두 여성이 희생된 후에야, 법무부와 경찰은 제도적 허점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 → 관련 기사 : https://url.kr/hf85ae )
■ 8월 17일 : 25세 황예진씨, 연인의 폭력으로 사망
사건은 7월 25일 새벽에 발생했습니다. 공개된 CCTV에 따르면, 황씨의 남자친구인 가해자는 피해자의 머리를 잡고 벽으로 수차례 밀쳐 넘어뜨리고, 머리에 주먹을 휘두르는 등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황씨가 사망하기 전이었기에 '상해' 혐의로 수사를 받던 가해 남성에 대해 법원은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그는 현재 '상해치사' 혐의로 경찰의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유족은 수상 인명 구조요원 자격증이 있는 가해 남성이 쓰러진 황씨가 위중하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며 119 허위 신고 등으로 미루어 살인과 다름 없다고 주장합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피해자의 얼굴과 나이, 사진 등을 공개한 유족의 뜻에 따라 신상 정보를 공개합니다.
■ 8월 12일 : 해군 여성 부사관 D씨
해군 중사 D씨가 12일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지난 5월 같은 부대 소속 상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뒤, 2차 가해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11년 차 베테랑 해군이었고, 생전 자신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가해자를 주의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만에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 데다, 지난 24일에는 육군에서도 성추행 피해를 당한 부사관이 2차 가해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그 와중에 D씨와 같은 부대에서 또 다른 성범죄가 발생했다고요? ( → 관련 기사 : https://url.kr/flz8od )
■ 그리고 ...
- 지난 6월, 고작 20개월 살다간 한 아이를 위한 부고를 뒤늦게 띄웁니다. 세상의 빛을 본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던 E양. 이 영아는 자신을 친딸로 알고 있었던 20대 남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8월 내내 법원에서는 그와 친모인 그의 아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친모 역시 사체 은닉 혐의를 받고 있지만, 남성으로부터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며 심리적 지배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 관련 기사 : https://url.kr/fhv38m )
- 지난 5월, 열네 살 나이에 성범죄 피해 조사를 받다가 친구와 함께 세상을 등진 중학생 F양의 유서가 8월 22일 발견됐습니다. 친구가 밤에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함께 있어준 다정한 아이였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친구의 의붓아버지. 평소 자신의 의붓딸에게도 성적 학대를 이어왔으며, F양과 의붓딸에게 아동학대와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 관련 기사 : https://url.kr/rpn6cs )
이게 모두 8월 한 달 동안 발생하거나 기사화된 여성들의 죽음입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이야기를 모두 더한다면, 오늘 뉴스레터를 어쩌면 끝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집에서, 친구의 집에서, 일터의 숙소에서, 지인의 집에서 피를 나누거나, 가깝거나, 알았거나, 근처에 존재하는 이로부터 침해 당했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은 애도해야 할 때
'여성의 죽음'을 얘기할 때면 꼭 이런 반론이 덕지덕지 붙습니다. "여자만 힘드냐?"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길을 걷다 넘어진 것을 보고 "괜찮느냐" 묻곤 하지만, 다짜고짜 "너만 아픈 것 아니니 일어나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상황을 바꿔 생각해 보면, 여성들이 고통을 말할 때마다 나오는 "떼쓰지 말라"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살인 피해는 남자가 더 많다. 남자가 더 많이 죽는다"라는 성별 이분법적 주장에도 단호히 반대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통계를 찬찬히 뜯어보면, 가해 여부와 무관하게 '유난히 많이 죽거나 피해를 입는 성별'이 있고, 그것이 가부장제 아래 행해지는 여성 혐오 범죄의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성별이 더 죽는다'를 대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난히 피해를 입는 이들을 보호하고 구제하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경찰청의 경찰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살인 사건 중 남성 피해는 164건, 살인미수의 경우 252건입니다. 여성은 138건, 147건입니다. 물론 남성 피해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남성이 35건의 강간 피해, 1,310건의 강제추행 피해를 당하는 동안 여성이 5,248건의 강간 피해, 1만3,835건의 강제추행 피해를 당하는 '성범죄' 현실과 견주어 봤을 때, 눈에 띌 정도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살인 가해자의 경우(미수 포함) 남성이 632명, 여성이 163명입니다. 오히려 피해의 성차보다는 가해의 성차가 더욱 도드라집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허스토리는 "여성이 1 만큼 아프니 남성도 1 만큼 아파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을 대결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은 시민 모두가 억압과 차별이 지배하는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되고, 부당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 구조로 인한 고통을 모두가 경감해 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일 것입니다. 그러니 위와 같은 주장을 덧붙이실 분들 있다면, 이 안타까운 사연들 앞에서 '남녀 대결적 시선'을 내려두고 조용히 애도에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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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죽음에 이르는 가정폭력을 어떻게 예견하고 막을 것인가. 가정폭력 전문가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의 현실 고발 논픽션
고백하자면 오늘은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추천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Her Story'에 추천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모두 읽거나, 정주행을 한 것들이었거든요. 게을러서요? 아뇨, 마음이 힘들어서 읽어 나가기 어려워서요.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이라는 제목에서처럼, 이 책은 살리지 못한 여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정 폭력의 매커니즘을 다루는데 비극에 다다르는 과정에 마음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럼에도, 가정폭력을 의제화한 수작이니 여러분은 꼭 끝까지 읽는데 성공하시길 바라요. ( → 한국일보 서평 읽기 : https://url.kr/lrdeuw )
"전 세계에서 친밀한 반려자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여성은 하루 평균 137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많은 여성이 죽어나갑니다. 소위 '묻지마'라 무신경하게 명명되는, 그러나 기저에 여성 혐오 정서가 짙게 깔린 비면식 범죄만으로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는 익숙해 마지 않은 '집'입니다. 가해자는 인면수심 악마가 아닌, 평소 "사랑한다" 표현하던 가장 가까운 파트너나 가족인 경우가 많고요.
가정폭력, 혹은 친밀한 이로부터의 폭력은 '살인의 전조'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의 사각지대였습니다. '너무 사적인 폭력'으로, 여성들이 알아서 '지혜롭게' 해결할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과감하게 가정폭력을 '공중 보건'의 영역으로 소환합니다. 8월에 일어난 각각의 여성 혐오 범죄를 보며,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이 남긴 마지막 유서를 읽으며, 이제 우리는 한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당신이 당하는 폭력은 조금도 사소하지 않다고.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9월 2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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