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자업체에 근무하던 지인이 재미있는 선택을 했다. 회사 업무와 별개로 여러 스타트업의 컨설팅을 해주던 그는 의뢰가 늘어나자 독립을 결심했다. 회사는 유능한 인재였던 그를 놓치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회사가 내민 카드는 근무 시간 조정이었다. 근무 시간을 알아서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나머지 시간에 컨설팅을 해서 돈을 벌라는 타협안이었다. 일단 지인은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퇴사 계획을 접고 본격적인 N잡러의 길로 들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여러 일을 하는 N잡러들이 부쩍 늘고 있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 한 직장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능력이 되면 여러 일을 하며 돈을 버는 N잡러가 당연시 된다.
코로나19로 재택 근무가 늘고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보니 과거와 달리 여러 일을 할 기회가 늘어났다. 특기를 올려 놓으면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스타트업 크몽과 숨고는 인기 있는 N잡러 플랫폼이다. 덕분에 이 같은 N잡러를 위한 플랫폼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월간 이용자 수가 최대 100%까지 증가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N잡러가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월급을 받으며 딴짓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에서는 N잡러를 허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5조에 명시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겸직 자유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회사의 동의를 받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일과 시간 이후 부업을 뛰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업무의 공정성을 해칠 경우 제한을 둘 수 있다. 즉 경쟁 업체에 동시 취업하거나 회사 업무로 알게 된 비밀을 돈벌이에 활용하는 경우 등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사규로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이중 취업을 금지하거나 제한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N잡러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기업들도 쉽지 않겠지만 전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런 성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동 조건을 유연하게 바꾸며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은퇴를 앞둔 직원들에게 N잡러의 길을 소개하는데, 이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다. 과거 우리가 그랬듯 중국은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을 적극 데려간다. 한창 일할 나이인 50, 60대에 퇴직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은 살아 있는 국부다. 이런 사람들이 제2의 인생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그래서 일부 대기업들은 퇴직자가 재능을 활용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탤런트뱅크 같은 스타트업들과 손잡고 N잡을 적극 알선한다.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의 전 삼성전자 임원, 20년 경력을 지닌 전 금융업체 자금조달 전문가, 전 LG 계열사들에서 지적 재산권을 다룬 국제 변호사 등이 탤런트뱅크를 통해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의 일을 해주고 있다.
물론 N잡러의 시대가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비정규직 증가 등 불완전 고용을 늘리고 노동 시간 증가 등 노동 환경이 가혹하게 바뀔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일본 후생노동부는 노동법을 개정해 부업을 할 경우 주당 8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고, 주 40시간 초과시 잔업 수당을 본업이나 부업 관련 업체 중 한 곳에서 지불하도록 했다. 우리도 N잡러 시대를 겨냥한 법적 장치와 제도 정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