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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할머니 지킨 ‘은혜 갚은 백구’, 국내 첫 명예구조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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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할머니 지킨 ‘은혜 갚은 백구’, 국내 첫 명예구조견 됐다

입력
2021.09.06 17: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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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논에 빠진 치매 할머니 곁 40시간 지켜
자신의 체온으로 저체온증 막아 생명 구해
양승조 지사, 백구에게 소방교 계급 수여
3년 전 믹스 유기견 거둔 후 주인에게 수차례 도움

논 속에 쓰러진 주인에게 자신의 몸을 붙여 생명을 구한 '은혜 갚은 유기견 백구’가 전국 첫 명예구조견으로 임명됐다.

논 속에 쓰러진 주인에게 자신의 몸을 붙여 생명을 구한 '은혜 갚은 유기견 백구’가 전국 첫 명예구조견으로 임명됐다.

충남 홍성에 사는 김정순(90)씨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반려견이 동네 찻길에서 치어 죽자 실의에 빠졌다. 항상 같이 가던 동네 산책, 마실길도 예전 같지 않았고, 가족이나 다름없던 반려견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기운도 빠졌다. 깊은 슬픔에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고령인 김씨의 깜빡깜빡하는 증상도 심해졌다.

이 같은 모습을 곁에서 1년 가까이 지켜보던 김씨의 딸 심금순(65)씨는 다른 반려견 하나를 들이기로 했다. 때마침 이웃의 소개로 흰색의 믹스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 3년 전의 일이다. 가족들은 ‘백구’로 이름을 붙였다.

백구는 애교가 넘쳤다. 김 할머니만 보면 꼬리를 요란하게 흔들어대는 백구는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했다. 김 할머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외출 때 주변의 큰 개가 할머니에게 짖거나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면 백구가 나서 더 크게 짖는 등 할머니의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도 했다.

그렇게 백구와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김 할머니에게 사고가 생겼다. 지난달 24일 밤 11시가 되어도 김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심씨 등 온 가족이 나서 동네를 찾았지만,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심씨의 실종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수색했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그 사이 비까지 내린 터라 가족의 속은 타들어 갔다.

실종 사흘째이던 26일엔 경찰과 홍성소방서와 의용소방대 대원이 수색해 합류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흘러도 이렇다 할 할머니 흔적을 찾지 못하던 수색팀에 신호 하나가 감지됐다. 경찰의 열화상 탐지용 드론에 생체 신호가 잡힌 것. 실종 신고 40여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열화상이 잡힌 곳은 벼가 무성하게 자란 논이었다. 대원들이 뛰어가자 논 가장자리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 백구가 바짝 붙어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 소방서 관계자는 “할머니는 저체온증 증세를 보였는데, 백구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며 “백구 덕분에 할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건강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딸 심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친정어머니가 유기견이던 백구를 만난 뒤 늘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백구가 항상 곁에 지켜 어머니가 외출할 때도 마음이 놓였다”며 “어머니가 나 죽을 때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백구가 어머니를 살렸다”고 기뻐했다.

1,000여 년 전 임실 오수에서 주인을 구한 충견, ‘오수개’ 이야기에 버금가는 일이 현실에서 재현되자 세상은 환호했다. 충남도는 6일 오후 홍성소방서에서 심씨의 반려견 ‘백구’를 명예119구조견으로 임명했다. 소방청이 작년 4월 ‘명예소방관 및 소방홍보대사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명예소방관으로 위촉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첫 주인공이 된 것이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모두가 힘든 시기에 백구가 기적을 만들어 모두를 감동시켰다”며 “백구가 보여준 것은 주인에 대한 충심이고, 사랑을 넘어서 인간의 효(孝)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국내 첫 명예 119구조견 임명식에는 홍성소방서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연합회원 등이 참석해 백구의 명예구조견 임명을 축하했다.

홍성=글 사진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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