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코로나가 멈춘 세상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베트남 중앙정부, 그리고 호찌민시는 자만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체 확진자가 1,500명을 넘지 않았다는 자체 통계치, 거기에 특유의 민족주의까지 결합된 '코로나19 대처 성공국가'라는 문구는 도처에서 '국가의 승리'로 포장됐다. 지난 1월 북부 하이즈엉성에서 처음 알파 변이가 발견됐을 때도, 5월 남부에서 델타 변이가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 국가라 가능한 강력한 지역 봉쇄와 격리가 있는 한, 전염병이 자신들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자만심이 독으로 변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의 방역 체계를 뚫기 위해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와 달리, '자기애'에 빠진 베트남은 불과 6개월 만에 청정국에서 최대 위험국으로 격하됐다. 실제로 알파 변이 상륙 당시 일일 확진자 100명대에 불과했던 베트남은 남부를 봉쇄한 7월 9일엔 호찌민 한 곳에서만 1,000명이 넘는 감염자가 속출했다. 방역 시스템 구축과 인프라ㆍ의약품 확보를 위한 시간을 허비한 대가는 처참하다. 베트남은 이제 일일 1만 명대 확진자가 나오는 게 일상인 나라가 됐다.
국가의 방역 철학 부재는 고스란히 시민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3일부터 일주일에 한번 식료품을 사기 위해 허용된 외출마저 막더니, 쿠데타도 아닌데 총을 든 군인들까지 호찌민 도심 곳곳에 배치됐다. 상황이 이쯤 되니, 국가에 대한 공개 비판이 반역으로 간주되는 베트남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두 달간의 집단 봉쇄 생활, 한국일보는 호찌민 거주 현지인 10명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한계에 도달한 '콤보로만 버티기'
베트남이 군대까지 동원한 이유는 식료품 구매 과정에서 생기는 다중 집합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였다. 군이 시민들의 식료품을 구매해 배달까지 해줄 테니, 제발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소리다. 그러나 4만 명가량의 군인이 투입된 호찌민의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군 병력의 절반이 도심 이동로 통제와 선제 방역에 동원된 것을 고려하면, 군인 한 명이 최소 시민 500명의 생명줄을 매일같이 책임져야 하는 계획이다. 당연히 전체 인구에 대한 통제는 불가능했고, 일부 고위험 지역에만 군의 영향력이 미친다.
군에 의한 보급 사회가 유연할 리 만무하다. 군 통제 지역 시민들이 베트남의 대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잘로'를 통해 마을 대표에게 필요한 식료품 목록을 써내지만, 도착 내용물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총 6개의 세트 메뉴(콤보)로 구성된 배급품은 쌀ㆍ건면ㆍ채소를 기본으로, 육류ㆍ생선ㆍ유제품ㆍ소스 등 종류에 따라 나뉘어 있다. 하지만 장시간 지속된 봉쇄로, 물량은 항상 부족하고 도착 시간마저 일정치 않다. 호찌민의 공립학교 교사인 딩쑤언한(22)은 "미리 식량 확보 계획을 짜놓으면 뭐하냐"며 "지난주엔 음식이 다 떨어져 (굶주림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푸념했다.
군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배달이 가능한 대다수 일반 마트들도 콤보로만 판매 물품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회계사인 쩐항(34)은 "콤보 외 생필품을 구하려면 일일이 마트마다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어렵게 주문한 물건도 빠르면 3일, 늦으면 일주일은 돼야 받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식료품의 질과 폭증하는 가격 역시 문제다. "대부분의 채소는 시들거나 오래돼 싹이 터 있다"는 한탄(이벤트 회사 기획담당자 따오프엉)과, "(봉쇄 전에 비해) 채소 1kg당 가격이 8만 동(한화 4,000원) 정도 오르는 등 생활비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걱정(소매점 매니저 응우옌땀)은 10명 모두 동일했다.
그나마 재택근무로 월급 일부라도 받는 시민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직장을 잃은 일용직 노동자 중 300여 명은 지난 두 달 새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돼 있어 지역 간 코로나19 전파의 매개체로 의심받는 처지이기도 하다. 현재 군과 공안은 노숙자 단속 및 백신 접종을 위해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쪼개 전담팀까지 만들었다. 봉쇄령의 직격탄을 맞은 빈민들은 시민사회가 돌보고 있다. '사이공(호찌민의 옛 이름)에서 사이공으로'(From Saigon To Saigon) 등 시민들이 조직한 구호단체는 지난달에만 빈민가에 330회 이상 들러 4,000여 명에게 기초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반토막 난 교민사회… "예측가능한 방역만이 탈출구"
자국민도 버티기 힘든 완전 봉쇄의 시대. 한국 교민들의 삶은 혹독함 그 자체다. 호찌민 7군에 집중 분포된 한인 식당 등 '코리아 커뮤니티'는 전멸에 가깝다. 비싼 임대료를 겨우 지불하면서 버티던 가게들도 봉쇄가 길어지자 사업을 줄줄이 접었다. 한국기업 주재원의 가족들은 군이 호찌민에 투입되기로 결정된 뒤 대부분 미련 없이 귀국했다. 실제로 8일 호찌민 총영사관과 한인회 자체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시대 직전 9만6,000여 명에 달했던 교민 수는 최근 5만여 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7군 푸미흥에서 5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는 "호찌민 보건당국이 올 5월부터 홀 영업을 금지하더니 7월부턴 배달도 못하게 막고 있다"며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식재료는 다 버려지고 미납 임대료만 쌓이는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018년부터 주재원 남편과 함께 호찌민에서 생활 중인 천모씨도 "자택 강제 격리가 두 달을 넘어가면서 9살 딸과 가족 모두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라며 "더 갇혀 사는 건 아이에게 무리라고 판단해 이달 중 호찌민 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남기로 한 교민들은 한인회의 SNS 단체대화방을 고리로 겨우 버티는 중이다. 아파트마다 할당되는 백신 및 식료품 정보 공유부터 응급 환자 대처까지, 외출이 안 되는 현 시점에서 사실상 한인 단톡방은 마지막 희망이자 최후의 연락망이다. 일반 주택단지에 떨어져 살고 있는 교민들은 이웃 베트남인들의 도움 없인 살아 남기 힘들다고 한다. 호찌민 외곽 지역에 거주 중인 선모씨는 "북부와 남부의 베트남어 성조와 일상 용어가 많이 다르다 보니, 북부에서 파견된 군인들과 대화하기 매우 어렵다"며 "옆집 현지인 가족들이 대신 식료품 신청서를 써주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굶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총영사관과 한인회가 고립된 교민들을 직접 돕기도 어렵다. 지난달만 해도 한인사회의 구호용품 전달 차량 통행이 허가됐으나, 군이 투입된 이후엔 이마저도 막아섰기 때문이다. 한인회 관계자는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면서 응급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며 "백신을 맞지 못한 교민들이 각 군과 아파트에서 실시되는 집단 접종 과정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기준, 한인사회가 확보한 백신을 접종한 교민은 2,754명에 불과하다.
호찌민의 위기는 이달 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7,000명 안팎의 일일 확진자가 나오는 등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인근 산업단지는 물론 하노이 등 주요 도시 상황 또한 호전되지 않고 있다. 전염병 시대의 바닥을 본 베트남은 이제서야 정책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호찌민 인민위원회는 지난 6일 “도시 전체 봉쇄 방식 대신, 저위험 지역(그린존)의 민간인 배달을 일부 허용하고, 일주일에 한번 시민들의 식료품 구매 외출도 허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봉쇄 하나로 해결될 전염병이 아니다. 더 버틸 수도 없다.", "명확한 기준과 계획이 있는, 예측 가능한 방역정책을 추진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20대 직장인 응옥안과 호뚜이한의 돌직구 발언들이 실현되는 날, 호찌민은 그토록 바라는 일상을 찾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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