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학생 죽음 불러… 檢 모욕 혐의 기소
"그냥 좀 조용히 죽어" "말로만 죽는다네"
"학교 구성원들이 조리돌림... 더욱 위축"
"익명 커뮤니티 부작용" 대학·운영진 뒷짐
대학생들이 애용하는 익명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동료 학생을 겨냥해 악성 게시글과 댓글(악플)을 작성했던 가해자가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 A씨는 악성 게시글에 괴로워하다가 지난해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사이버불링(온라인에서 특정인 대상 집단적·지속적·반복적 모욕·따돌림·협박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린 셈이지만, 정작 학내 구성원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대학과 커뮤니티 운영진은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조리돌림' 온상 된 온라인 커뮤니티 "아는 사람이란 생각에 더 위축"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2부(부장 김선문)는 에브리타임 서울여대 게시판에서 활동한 B(25)씨를 최근 모욕 혐의로 기소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피해자 A(29)씨는 2년 전부터 심적으로 지칠 때마다 위안을 얻기 위해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렸다. 그러나 B씨를 포함한 일부 이용자들은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 "죽고 싶다는 말만 하고 못 죽네" 등 익명으로 댓글을 달며 A씨를 조롱했다. A씨가 지난해 10월 극단적 선택을 하자, 유족들은 서울 혜화경찰서에 B씨를 고소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사이버불링은 모르는 사람을 겨냥한 단순 비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학생 신분을 인증하고 가입하는 커뮤니티 특성상 피해자를 아는 익명의 동료 학생들이 괴롭힘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씨 사망 사건에서도 경찰이 에브리타임을 압수수색해 서버 기록을 확인한 결과, 가해 학생 B씨는 A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A씨 어머니는 "딸이 평소 친했던 B씨에게만 말해준 내용이 댓글에 포함돼 있어서 작성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에선 가해자들이 특정인을 겨냥한 비방 글을 올려도, 피해자는 가해자들이 누군지 알 수 없다. 다만 '동료 학생들이 단 댓글'이란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선 더욱 신경이 쓰이고 학교 생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학생 주모(24)씨는 2년 전 교내 여성 인권 관련 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격 대상이 됐다. 학교 졸업생이 자체적으로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주씨는 "나를 겨냥한 게시글에 '방금 어떤 건물에서 봤다' '누굴 닮았는데 못생겼다'는 댓글이 달렸다"며 "학교 가면 모두 날 알아보고 욕할 것 같아 움츠러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이름 내거는데... 학교 본부와 사이트 운영진은 뒷짐
익명성에 기대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악성 게시글을 작성하는 행위는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6월까지 청년참여연대가 에브리타임 이용자 325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에브리타임 게시글을 보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응답한 비율은 79.1%(248명)에 달했다. 불쾌감을 느낀 이유로는 '익명의 막말과 비방글' 때문이란 답이 38.3%(95명)로 가장 많았고, '여성 혐오 등 소수자 혐오 표현'이란 응답도 27.4%(68명)에 달했다.
피해자가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한데도, 대학은 구성원 보호에 소극적이다.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은 "(A씨 학교를 포함해) 다수의 대학에 학내 인권침해 사건을 처리하는 인권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인권침해는 학내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며 "거의 모든 커뮤니티들이 학교 이름을 내걸고 운영 중인 만큼 학교 측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운영진도 수수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에브리타임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자율규제 강화 권고를 받고 '타 이용자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게시물이 삭제되고 이용이 제한된다'는 내용을 담아 이용규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악의적 글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정보통신 심의규정을 그대로 옮겨왔을 뿐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학내 혐오 표현 대응 활동을 해온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는 "운영진이 게시글 신고·삭제와 차별적 표현에 대한 기준을 더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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