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만족도 50대부터 급하강 60대 '최저'
생애 전반에 걸친 가사·돌봄 부담이 원인
"남성 독거노인 취약 문제와도 연결"
사회생활 '36년' 차인 A(60)씨가 일을 쉬었던 기간은 딱 3년. 집안 일에 아이 둘 키우면서 도저히 출근까지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론 마트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직과 일용직을 반복했다. 물론, 가족들 밥 차리기와 청소, 빨래는 여전히 기본 일과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지나가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새 일거리를 찾아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A씨는 "나이가 많아 일자리 구하기 힘들지만, 주부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주야교대근무면 일단 지원부터 할 수 없다"며 "나도 충분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사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 자괴감이 들고 우울증이 오더라"고 말했다.
한국 중년 여성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40대 이후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벌이와 집안일, 양쪽 모두에서 치이는 여성들의 삶, 그리고 그런 일생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내야 하는 구조적 환경에 주목한다. '나이 들면 으레 울적해진다'고 말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성의 만족도, 남성보다 더 크게 떨어진다
7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0년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여성의 경우 20~40대까지는 만족도가 69.7%, 67.2%, 68.4%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다가 50대 들어 63.9%로 뚝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 만족도는 51.0%로 더 크게 떨어진다. 남성도 나이가 들며 점차 만족도가 떨어지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여성처럼 크게 떨어지진 않는다. 20~40대에 64.7%, 66.5%, 63.6%를 유지하다 50대에는 61.6%, 60대 이상은 52.7%를 기록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만족도가 더 급격히 떨어지는 셈이다.
이런 결과는 남녀가 겪는 생애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만족도는 스트레스와 연관이 깊다. 남성의 스트레스는 직장 근무 기간과 함께 움직이는 데 반해, 여성은 보통 경제활동 외에도 가사·육아 부담, 경력단절, 재취업 등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성별 스트레스 요인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 주재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가장 큰 스트레스 원인을 보면 남성은 오로지 '일'이고, 여성은 일과 가정(가사와 육아) 둘 다 동일한 수준"이라 말했다. 일선에서 물러나는 나이대가 되면 남성들의 스트레스는 줄지만, 여성에게는 가사 스트레스가 계속 남아 있다보니 만족도가 더 크게 떨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중노년 여성 스트레스·우울감 빨간불
이는 스트레스 인지율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남성은 한창 일을 하는 30대에 스트레스 인지율이 38.8%로 정점을 찍었다가, 60대에 16.9%, 70세 이상은 9.3%로 떨어진다. 반면 여성은 60대 21.4%에서 70세 이상 23.1%로 오히려 올라간다. 우울감을 경험하는 비중도 여성은 40대 8.7%에서 50대 14.4%로 급증한 뒤 60, 70대에서도 10%를 웃돈다. 남성의 40~70대 우울감 경험률은 각각 8.7%, 6.8%, 9.5%, 9.9% 수준에 그쳤다.
가사와 육아 부담에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크다. 울산과학대에서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를 통해 경력단절 후 재취업한 30~50대 여성 6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은 '존재감 상실과 우울' '욕구와 동떨어진 일자리' '가사와 육아는 여성들만의 몫' 등이었다.
가정 내 성역할 고착화라는 고질적 문제가 중년과 노년기 여성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계부양자 역할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돈을 벌든 안 벌든 돌봄이나 가사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생애 동안 이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간다"며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는 근본적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해법은 여성 배우자가 사망하고 나면 사실상 고립되는 남성 노인 취약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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