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함정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선임병들의 폭행과 폭언,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각군에서 벌어진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처럼 이번에도 군 간부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병사 보호를 소홀히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사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해군은 수사 대상자인 함장과 부함장 등을 해외로 파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조치로 유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폭행, 성범죄 등 병영 악습은 군의 근본적 체질개선 없이 근절될 수 없다.
군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2월 해군 구축함 강감찬함에 배치돼 복무 중이던 정모 일병이 휴가 중인 6월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일병은 아버지 간호를 위해 청원휴가를 다녀왔는데, 오랫동안 부대를 비웠다는 이유로 선임병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신병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업무 미숙을 이유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정 일병이 함장에게 이를 신고했는데도 가해자들로부터 분리와 하선 조치에 늑장을 부린 점이다. 고인이 공황증세를 보이며 갑판에서 기절하기까지 했는데도 신고일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4월 6일에야 고인을 하선시켰다고 한다. 군의 사후 조치는 더 한심하다. 관리 책임자인 함장, 부함장은 7월 문무대왕함 교체병력으로 투입됐다. 군 수사기관은 유가족에게 수사 브리핑을 하면서 정 일병의 휴대전화를 감식한 결과 입대 전의 자해 시도가 식별된다며 피해자를 탓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최근 군대 내 폭력을 묘사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6일 국방부는 “병사들의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군이 병영 인권 개선을 자신한 바로 다음 날 이 사건이 공개됐다. 감소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내 자살자가 한 해 40명을 넘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없다면 인권이 존중되는 군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국민들의 비웃음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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