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女 허락만 받고 부부 거주 집 들어가
남편, 주거침입 고소…1심 유죄→2심 무죄
“주거 평온 침해 아니다” 대법원 판례 변경
문 안 열자 문고리 부순 남편 “침입 아냐”
불륜 상대의 집을 들락거리다가 상대방 배우자에게 들켰다면 이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대법원이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승낙을 받아 출입했다면 침입으로 볼 수 없다’며 지난 37년 동안과 다른 새로운 판례를 썼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기혼인 B씨와 내연관계를 맺고, B씨 남편이 집을 비운 틈을 타 부부의 집을 세 차례 출입했다. 남편은 이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A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가 B씨 남편의 주거 평안을 해쳤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거주자 중 일부의 승낙을 받아도, 부재중이던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면 주거침입에 해당한다’는 1984년 이후 유지돼 온 판례를 따른 결론이었다.
항소심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B씨가 문을 열어주면서 들어오도록 했다”며 “이처럼 공동거주자 중 1인의 승낙하에 ‘평온하게’ 들어간 걸 침입으로 볼 순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남편 몰래 안 돼” vs “국가가 나설 일 아냐”
하급심의 엇갈린 판단에 대법원은 올해 6월 공개변론을 여는 등 숙의에 들어갔다. 공개변론 당시 검찰은 “부인의 승낙이 있었다는 이유로 남편 의사에 반하는 출입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처벌을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회사원 두 명이 동거하다 한 명이 몰래 애인을 집에 들여도 처벌할 거냐”며 “공동체 내에서 해결할 문제지, 국가가 형벌로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맞섰다.
고민 끝에 내린 대법원의 결론은 무죄였다. 다수인 9명의 대법관이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침입’은 사실상의 거주 평온 상태를 해치는 방식으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외부인이 집에 있던 거주자의 승낙하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갔다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더라도 침입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가 37년 만에 바뀐 것이다.
이견이 없진 않았다.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은 “보호법익인 ‘사실상의 평온’은 거주자의 주거에 대한 출입통제가 자유롭게 유지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부재중인 거주자가 명백하게 출입을 거부했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며 기존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문전박대에 문고리 부순 남편, 주거침입 무죄
대법원은 이날 공동주거침입죄로 기소된 C씨와 C씨 부모의 선고도 함께 진행했다. C씨는 부인과 부부싸움 후 집을 나갔다가, 한 달 뒤 부모와 함께 집을 찾아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부인 대신 집에 있던 처제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문 걸쇠를 부순 뒤 집으로 들어가면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C씨와 부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봤다. 반면 항소심은 부모는 유죄, C씨는 무죄라고 판결했다. C씨의 경우 별거 중이긴 했어도 사건 당시 부부가 아직 혼인 중이었던 점 등에 비춰 공동주거자로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C씨뿐 아니라 부모도 무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거주자의 출입을 금지할 경우, 이에 대항해 공동주거지에 들어간 경우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나아가 “공동거주자 중 한 명의 승낙을 받은 외부인이 해당 공동생활 장소를 출입하는 것이, 이를 승낙한 거주자의 ‘통상적 장소 이용 행위’로 볼 수 있는 경우에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C씨의 ‘내 집 방문’ 과정에서, C씨의 승낙하에 부모도 함께 들어온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