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장단 모임이 된 건설기계노조
장비 20대 사업자 노조 가입은 위법 불구
노조 간부 시정명령에도 탈퇴 후 재가입
‘고용주 노조원’에 착취당한 진짜 노동자?
하루도 일 못하고 쫓겨난 비노조 사업자
노동청 "더 강한 제제 없다" 사실상 방치
지난 9일 경기 화성시의 한 건설장비 임대업체 주차장에는 건설 노조원들이 공사현장에서 집회할 때 사용하는 민주노총의 확성기 방송차량이 보였다. 임대업체 대표 김모(43)씨는 굴착기(포클레인)와 덤프트럭 등 건설 중장비를 보유한 법인 대표였지만, 민주노총 건설기계노조 조합원이다. 노조법상 법인 사업주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데도, '사장님'은 버젓이 노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중장비는 모두 27가지다. 1대당 5억 원이 넘는 고가 장비인 타워크레인의 경우 전문 임대업체들이 소유하고, 업체와 고용 계약을 맺는 기사들은 조종사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을 제외한 굴착기, 덤프트럭, 기중기, 지게차 등 26개 장비 소유주들은 건설기계노조를 구성했다. 노조에는 장비 한 대만 소유한 채 직접 운전하는 개인 사업자도 있지만. 장비를 여러 대 가진 법인 사업자도 제법 있다.
개인 사업자의 노조 가입은 최근 들어 인정되는 분위기다. 사업자로 등록은 했지만, 실질적으론 사업장에 소속돼 일하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나 골프장 캐디 등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로 특수고용직의 노조원 지위는 사실상 용인되고 있다.
반면 법인 사업자의 노조 가입은 명백한 위법이다. 그럼에도 건설기계노조에 가입해 노조원으로 활동하는 '사장님'들이 적지 않다. 법인 사업자가 꾸준히 노조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조합원이 되면 건설 하도급업체에서 일감을 따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노조 역시 조합원 숫자를 늘려 세력을 키울 수 있고, 이들의 영업망이나 풍부한 장비가 일감을 따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법인 사업자의 노조 가입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고용주 노조원’에 착취당한 진짜 노동자
'사장님 노조원'이 잇속을 챙기는 사이, 이들이 고용한 ‘진짜 노동자’는 양대노총에 가입도 못 해 노동자로서의 권리 행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전국굴착기(포클레인)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고용주 대부분이 포클레인 여러 대를 가진 사업자인데 '신기하게도' 노조원 신분이었다"며 “반면 우리가 양대노총에 가입을 시도하자 거절당했다. 우리 교섭 대상이 결국 같은 조합원이 되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전했다.
굴착기 조종사노조는 2017년 6월 결성됐으며, 현재 조합원은 150명 정도다. 장비를 소유하지 않은 일용직 기사로 대부분 경기도에서 일한다. 평균 급여는 일당 25만 원 정도로, 주휴 수당과 퇴직금은 없으며, 작업일수는 매달 평균 20일 이내다. 23년째 굴착기 기사로 일해온 홍순권 노조위원장은 "노조원 모두 사업자와 근로계약서 한 번 쓴 적 없고 임금협상도 제대로 못 해봤는데, 정작 사업자들은 노조원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분개했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입수한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급여 입금 내용을 살펴보니 대부분 회사 명의로 입금됐다.
'사장님 노조원'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명의로도 장비를 등록한다. 사장 노조원에 고용됐던 기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사장 1인당 보유 장비는 평균 20대 안팎에 달한다. 민주노총 소속 '사장 노조원' 회사에서 기사로 일했던 박모(53)씨는 “회사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굴착기만 15대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측은 굴착기 기사들의 노조 가입을 반려한 것에 대해 “그분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오해가 있었다”며 “다시 가입을 요청하면 긍정적으로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님들이 노조에 다수 가입한 것을 두고는 “법인 사업자의 노조 가입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하루도 일 못 하고 쫓겨난 비노조 사업자
'사장님 노조원'이 자신이나 가족 명의로 소유한 장비는 굴착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노총 건설기계분과 소속 간부 A(42)씨는 2017년 2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크레인 임대업체를 버젓이 법인 사업자로 등록했다. 그는 지난 4월 29일 경기 광주시의 물류센터 공사현장의 협력업체와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엔 3명의 '블랙리스트'가 적혀 있었는데, 민주노총 건설노조원 2명과 비노조 사업주 1명이었다. 이들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한국노총은 공사현장에서 문제 제기를 안 하고 집회도 안 할 것을 합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합의서에 적시된 비노조 사업자 B씨는 ‘사장 노조원’ A씨의 합의서 때문에 현장에서 쫓겨났다. B씨는 4월 23일 현장에 장비 2대를 공급하기로 계약했지만, 계약 6일 만에 일감을 뺏기고 말았다. B씨는 “1년은 일할 수 있는 현장이었지만 결국 하루도 일을 못 했다”며 눈물을 삼켰다. A씨는 이에 대해 “현장 협력업체에 ‘민주노총 장비는 쓰지 말고 지역 장비를 쓰라’고 말한 뒤 나와버렸다. 지금 거기엔 한국노총 장비도 없고, 내 업체의 장비들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비교노동법학회 회장)는 이 같은 합의서에 대해 “합의서대로 이행된다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6조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는 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처럼 건설기계노조에 일감을 빼앗긴 사례는 비노조 사업자들이 모인 한국건설기계기술협회가 수도권 회원업체들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2019년 한 해에만 한국노총에 피해를 본 사례가 최소 8건이었고, 민주노총에 의한 피해 사례도 5건 이상이었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관계자는 '비조합원 현장 배제' 이유를 묻자 “비조합원이 우리 조합원의 현장 작업을 방해할 때도 있다”고 반박했다.
한노총 간부, 시정명령에도 탈퇴 후 재가입
한국노총 건설기계노조의 총괄본부장도 '사장님'으로 확인됐다. 총괄본부장 C씨는 본인 명의로 2억8,000만원 짜리 기중기 1대와 배우자 명의로 2대 등 총 3대를 갖고 있다. C씨 배우자는 ‘OO특수중기’라는 법인 대표자이고, C씨 자신도 3년간 대표이사를 지냈다. 사업자등록증에 기재된 C씨 연락처 옆엔 ‘배차 담당’이라고 적혀 있는데, 배차는 통상적으로 건설기계 임대업체 대표가 도맡는다.
C씨는 이에 대해 “회사가 올린 매출엔 내 일감을 받아 다른 사람이 일한 것까지 포함돼 있어 실질 이익은 거의 없다”며 “노조 일을 하느라 회사 일은 거의 못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용노동청은 2018년 12월 C씨 등 한국노총 건설기계분과 조합원 13명을 1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자로 판단해 노조에 시정을 요구했다. C씨는 그러나 일시적으로 노조를 탈퇴한 뒤 재가입해 여전히 노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용노동청 담당 직원은 이에 대해 “탈퇴하고 재가입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시정 요구보다 더 강력한 제재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법인 사업자가 노조에 가입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시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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