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엇갈리는 수치 중, 편향적으로 선택해 결론
조사 참여 연구자조차 정부 결론에 반발하기도
"환경부 기준이면 어떤 곳도 오염 피해 인정 못 받아"
[국가가 버린 주민들]<2>방치된 시스템 ⑥두 번 죽이는 조사 결과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난 7월 27일, 기자가 찾은 충남 천안시 수신면 장산5리. 이 한적하고 아담한 마을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장인 김영세(70)씨는 “마을에 환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멀쩡한 사람이 하나 없다니까”라고 전했다.
총 24가구 37명 중 암 환자 12명, 이미 사망한 암 환자도 4명이다. 갑상선 질환이나 백혈구·혈소판 감소 등의 질환을 앓는 주민 역시 10여 명.
주민들이 지목한 오염원은 인근 전선, 필름 제조공장이다. 각각 1997년, 2004년 마을에 들어섰다. 나란히 있는 두 공장은 주거지역으로부터 300~500m 이내에 위치하며, 도보로 5분 안팎의 거리다.
기자의 시야에 공장이 보이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김씨는 “예전에는 냄새가 더 했다. 항의했더니 보강을 한다고 해서 이 정도”라면서 “냄새만 문제인 줄 알았지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고 했다.
지난해 정부에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고, 다음 달이면 최종 결과가 나온다. 과연 이곳 주민들은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김씨는 “유해물질이 온종일 나온다. 그런데 조사를 한다면서 장비를 굴뚝에 설치해 낮 시간에 짧게 조사하고 마는데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겠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환경부의 조사 결과는 주민들을 두 번 죽여 왔다. 하루 540여 톤(2017년 기준)의 폐기물 소각 연기를 마시며 10년간 100여 명의 암환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 북이면, 200개의 공장이 모여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라고 결론 난 인천 사월마을도 정부는 암·폐질환 등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사 연구 책임자조차 정부의 결론에 반발하고, 환경부 기준으로는 어떤 지역도 피해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관 높다'는 증거는 버리는 정부
“소각장과 주민들 집단 암 발병 간에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저희가 연구를 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도 저희가 내기를 원했는데, 환경부가 자체적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연구 결과를 냈어요. 저희와 논쟁이 있었죠.”
청주 북이면 소각장 인근 건강영향조사 연구 책임자였던 김용대 충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북이면은 전국 폐기물의 7%가 소각되는 곳이다. “처음에 솥단지만 하던 게 거대한 산업단지처럼 됐고”(유민채 북이면 주민협의체 사무국장), 소각장 3곳의 연기가 중첩되는 지역에 사는 주민도 적지 않다.
정부의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카드뮴(1군 발암물질)
① 주민들의 소변 중 카드뮴 농도가 우리나라 성인 평균보다 3.7~5.7배나 높고, 소각장 가까이 사는 주민일수록 이 농도가 높다.
② 소각장 배출구에서는 검출되지 않았고 대기 중 카드뮴 농도도 낮다.
◆다이옥신(1군 발암물질)
① 대기 중 다이옥신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
② 대기 중 다이옥신이 서울의 다른 소각장 주변 지역과는 큰 차이가 없다. 토양의 다이옥신 농도도 전국 평균보다 낮다.
◆암 발병
① 여성의 신장암 발생이 타지역(보은군, 음성군)보다 2.79배, 남성의 담낭암 발생이 2.63배 높다.
② 소각시설과 관련성이 높다고 알려진 혈액암, 폐암 발생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환경부는 ②번만 판단 근거로 택했다. “소각장에서의 다이옥신, 카드뮴의 배출 수준이 낮고, 소각시설과 관련성이 높은 암 발병 증가가 명확하지 않다”며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주민들 몸의 높은 카드뮴 수치는 중요한 증거였는데 결론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카드뮴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이 확실한’ 1군 발암물질이다. 특히 주민들 소변 중 카드뮴 농도가 높을수록 유전자 손상지표 역시 높아졌는데 말이다.
김용대 교수는 “카드뮴이 몸에 들어가면 신장으로 가장 많이 가기 때문에 소변 속 농도가 높다는 건 과거부터 오랫동안 누적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장암과 담낭암의 높은 발병 비율은 간과해도 될까. 김용대 교수는 “소각장에는 온갖 잡것을 다 넣는다”며 “발암물질 종류도 엄청 많아서 각종 암이 다 나올 수 있고, 어떤 암이 나와도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북이면은 소각장 외에 공장(대기배출시설)이 113개가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청원대상이 소각장이어서, 이들 공장들이 뿜는 유해물질은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환경부 관점이면 어디도 피해 인정 못 받아"
두 집 걸러 한 집이 빈집, 벽마다 먼지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는 강원 동해시 송정동 동해항. 시멘트, 석탄 원료 등을 운반하는 항구로, 인근에는 세계 최대 규모 쌍용시멘트 공장과 국내 최대 합금철 공장인 동부메탈이 있다. 주민들은 먼지를 막기 위해 덧문을 설치하고 한여름에도 창문 한 번 열지 못하며 각종 호흡기질환 등을 달고 산다.
환경부 조사 결과 동부메탈에 가까운 주택일수록 먼지 내 망간 등의 농도가 높았고, 주민의 혈중 납 농도(2.46㎍/dL)도 우리나라 평균(1.77㎍/dL)보다 훨씬 높았다.
정부는 “동해항과 동부메탈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중금속이 주민의 인체 노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도 “질환 수준의 특이한 건강영향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했다.
폐질환 환자들이 있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특별히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눈 뜨자마자 청소를 해도 반나절만 지나면 쌓이는 먼지를 매일같이 지켜보는 주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편을 폐병으로 잃은 정정희(74)씨는 "(정부에서) 조사한다 뭐 한다고 할 때 남편이 병상에 있었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면서 "나도 지금 여러 폐질환을 앓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마을을 떠난 사람이 많아서 주변엔 죄다 빈집"이라고 덧붙였다.
200여 개의 공장에 둘러싸인 52가구, 흙에 자석을 대기만 해도 쇳가루가 딸려나오는 인천 사월마을. 주민 122명 중 15명(2005~2018년)이 폐암, 유방암 등에 걸려 이 중 8명이 사망했다. 환경부 조사 결과, 52가구 중 37가구(71%)가 “(매우) 높은 주거환경 위험으로 인해 거주하기 어렵다”는 '주거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건강 피해는 인정받지 못했다. “주민들의 체내 유해물질(중금속과 발암물질) 일부 항목이 국민 평균보다 높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권고치(독일환경청 인체모니터링위원회)보다는 낮았고, 암 발생 비율 역시 전국 평균보다 높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인보다 신체가 훨씬 큰 서양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 권고 기준을 가져다 쓴 것이다. 전국 평균보다 4.3배, 2.9배 높은 우울증, 불안증만 공장 및 관련 차량의 소음 때문인 것으로 연관성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은 지금은 유해물질로 인한 건강 피해(집단 암 발병)를 인정받은 대표적인 지역이 됐지만, 환경부의 첫 결론은 달랐다. 환경부는 2018년 12월 연구를 담당했던 기관(환경안전건강연구소)으로부터 최종 조사 결과물을 받은 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내부적으로 결론 냈다. 이미 인근 비료공장이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워 발암물질을 내뿜은 사실이 드러난 다음인데도 말이다.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와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결국 '객관적인 제3자'인 한국역학회에 자문을 받기로 했고, 역학회가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자 환경부도 건강 피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부가 연관성이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조사가 끝난 후 11개월이 지나서야 최종 결과가 발표됐다.
협의회 민간위원이었던 오경재 원광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환경부는 굉장히 소극적이며 방어적,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관점으로 환경성 질환을 다루면 우리나라의 어떤 오염 지역도 피해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사 시작되면 오염 줄이는 업체들
건강영향조사가 시작되면 문제의 공장들은 으레 폐쇄하거나 오염물질을 줄인다.
청주 북이면 주민들은 조사 당시 “올해는 예전과 다르게 냄새도 안 나고, 이 정도면 살 만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이옥신만 해도 2017년 환경부 점검(매년 다이옥신 배출시설의 약 10% 점검) 결과, 북이면 소각로 한 곳(글렌코)에서 기준치의 5배가 검출됐으나, 2020년 건강영향조사에선 기준보다 낮게 나왔다.
장점마을 조사도 비료공장이 가동 중단된 뒤 이뤄졌다. 비료공장이 가동되던 시기에 난 2년생 소나무 잎에선, 공장 폐쇄 이후에 난 1년생 소나무 잎보다 많은 발암물질(다환방향족탄화수소)이 검출됐다. 그러나 간접 지표라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경재 교수는 “주민들은 장기간 노출됐고, 질환 등의 잠복기가 굉장히 길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논할 때도 현재 수치보다 훨씬 가중치를 더해서 해석해야 한다”며 “그런데 환경부는 현재 데이터로 증명하지 못하면 자꾸 과소평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점마을의 이웃 동네인 왈인·장고재마을 주민들이 오염원이 없어진 지금 뒤늦게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낼 수 있는지조차 정부와 지자체의 의견이 엇갈린다. 환경부 관계자는 "폐업해서 오염원이 없는 곳의 조사 방식을 정해놓은 법규는 없으며 청원이 이뤄지면 역학 전문가들이 방법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으나, 법 개정으로 올해 7월부터 건강영향조사 권한을 이양받은 전북도는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포괄적 인과관계 인정 필요
오염지역의 암 발병을 음주, 흡연 등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오경재 교수는 “질병에 걸린 원인의 90%가 생활 습관 때문이고 유해물질이 1%를 기여했다해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암은 이 1%가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든 10%든 수량적 해석이 아니라 기여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중요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지금은 기여율이 낮으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도 “굉장히 복합적인 것이어서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를 100가지를 댈 수도,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를 100가지 댈 수도 있다”며 “‘불확실성이 있으니 납득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연구해보자’는 것은 가해자인 기업 측이 계속 주장하는 논리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인과관계 인정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교수는 “앞으로는 산업화 시기 연탄공장처럼 뚜렷한 연관성이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어지고, 과학적인 근거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문제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포괄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면 조치를 취하는 등 ‘사회적 판단’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입증의 책임과 절차도 개선이 필요하다. 오경재 교수는 “전문 지식이 없는 주민들에게 증명하라고 할 게 아니라, 원인을 제공했고 전문성을 가진 정부와 지자체가 ‘인과관계가 없다’고 입증하지 못하면 인정해주는 게 맞다”며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지 못한다면 피해자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신건강까지 오염 피해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도 있다. 인천 사월마을 연구 책임자인 이관 동국대 의대 교수는 “지금까지 건강영향조사는 암 등 중증질환을 중심으로만 이뤄져왔다”며 “조사항목에 불면증, 우울증 등 정신·심리 부분과 주거 적합성 지표를 포함시켜, 심리·주거환경 측면의 불편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2>방치된 시스템
⑤유해물질, 운에 맡긴다?
⑥두 번 죽이는 조사 결과
⑦이주대책은 언제
⑧회한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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