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의 '공동부유' 선언을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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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공산당 중앙재정경제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중국 경제의 미래 좌표를 '공동부유(共同富裕)' 즉 함께 잘사는 사회를 향한 정비작업으로 공식화했다. 공동부유의 기반을 2035년까지 완성한다는 목표다. 그래야만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공산당대표대회(당대회)에서 천명한 2049년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실현할 수 있다.
중국의 공동부유론의 연유
사실 공동부유는 중국인들에게는 오래된 이상이자 염원이다. 예기(禮記)와 도화원기(桃花源記) 같은 고서에서는 각각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모두의 것)’과 ‘세외도원(世外桃源:평화롭고 유복한 신선)’으로 이런 세계를 묘사했다. 중국 근대사 인물 중 홍수전은 ‘태평천국(太平天國)’으로 이를 실천해보려 했고, 강유위는 ‘대동(大同)’사상을 선전했다.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한 중국은 건국 초기 50년대에 소련식 경제모델로 공동부유를 시도했다. 집단농장을 통해 빈곤을 퇴치해 공동부유를 일궈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끝나자 공동부유론은 중국 정치경제에서 종적을 감춰버렸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공동부유론은 부활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평등주의와 ‘철밥통(집단농장, 국유기업 등)’과도 같은 전통적 사회주의 노선으로는 공동부유의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선부(先富)론’을 제시했다. 부를 먼저 축적한 뒤 낙후된 이들에게 순차적으로 지원하는 균형발전을 통해 다함께 잘사는 대동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덩샤오핑이 선부론을 소개한 이유는 개혁개방 반대파의 비판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빈부격차와 양극화 등 개혁개방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덩샤오핑은 선부론의 선순환 협동구조가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는 데 최적의 전략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선부론이 공동부유로 견인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되살아난 공동부유론
엄밀히 말해 중국의 사회주의 발전단계론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중국의 공동부유 추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중국이 '온포사회'(溫飽: 본적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회)를 거쳐 '소강사회'(小康: 일정 문화생활을 영위할 정도의 여유가 확보된 사회)를 달성하면 그다음 단계는 대동(大同)사회로 가는 것이다. 대동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소단계의 의미로 공동부유가 있다. 중국 공산당은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공동부유(사회주의 현대화 사회)를 2035년까지, 대동사회(사회주의 현대화 강국)를 2049년에 달성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부유를 향해 선부론을 실천하는 시기가 시진핑 집권기와 맞아 떨어진 데 있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이 시기를 20세기 말로 봤다. 그때쯤이면 중국이 소강사회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랬으면 시진핑이 아닌 다른 지도자가 공동부유를 향한 대장정을 수행해야 할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소강사회가 2021년 2월에 구현된 것으로 선포했다. 지난 2월 25일 전국 탈빈곤 표창 대회에서 중국의 탈빈곤이 선언되면서 소강사회의 달성이 공식화된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의 공동부유 추진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주지하듯 중국 공산당의 영도력과 통치 목표는 지고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지도자가 되어도 이를 계승하고 완성해야 할 사명을 피하지 못한다. 시진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공동부유를 일궈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이유이기도 하다.
공동부유를 향한 행보
중국은 공동부유의 구현을 위해 세 가지 책략을 운영 중이다. 하나는 제도개혁이다. 특히 부의 효율적 분배를 위한 체제와 제도 개혁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득세, 증치세, 소비세, 상속세, 증여세, 보험료 등의 분야가 포함된다. 지방세수를 더 효율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강조된다. 개혁개방 이후 세제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득과 자산이 증가하면서 이를 더 효율적으로 징수하고 분배할 수 있는 체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하나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공동발전이다. 물질문명건설은 노동생산력을 발전시켜 국민경제생활이 풍요로워지는 수준을 의미한다. 정신문명은 사회주의 정신문명이다. 덩샤오핑은 이를 고상하고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의 창출로 정의했다. 시진핑은 이를 중국인이 공산주의의 이상을 가지고, 품위 있게 도덕을 지키며 공산당과 사회의 기율을 준수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또 하나는 공동부유의 현실성과 실현가능성을 시험하는 시범특구의 운영이다. 시진핑은 심천(2019)과 푸둥(2020)을 이미 선정했고 지난 5월에 절강성을 추가했다. 절강성이 추가된 것은 도농 간의 소득격차와 빈부격차가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작기 때문이다.
시진핑을 향한 의구심
시진핑의 공동부유 목표제시는 사회주의 발전단계상 분명 가야 할 여정이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시진핑은 이미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3연임 제한을 폐지,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놓았다.
사실 공동부유의 정신문명 건설 사업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 권력은 개인의 문화생활을 얼마든지 비도덕적, 비윤리적 언행으로 규정하고 공동부유의 기준을 반한 것으로 단죄할 수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의 문화산업과 사교육 관련 제재조치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SNS 계정 접속을 일정 기간 금지하거나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주말로 한정한 조치는 사실 4차 산업시대에 비상식적이다. 어찌 보면 중국의 헌법도 보장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선택 권리를 위반하는 처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은 이 조치를 강제하고 있다.
연예인, 기업인 등 부호들이 정부규제와 경제체제의 불합리성을 토로하면 제재 대상이 되어 버린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한동안 자취를 감춘다. 최근에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약 250여 개의 기업을 규제하려 한다. 명목은 중국기업들이 외환으로 외국인을 부자로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중국기업의 부의 해외유출을 막고, 사실상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시진핑 시대에 와서 덩샤오핑이 기대했던 공동부유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덩샤오핑은 공산당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초심’에서 제도와 체제 개혁을 통해 부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투자방식으로 분배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오늘날 시진핑이 취한 조치는 이런 ‘초심’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유린과 사유재산권 침해 상황이 속속 연출되고 있다.
분명 모든 것을 시진핑의 정치적 야심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시진핑의 공동부유를 위한 개혁조치를 중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공동부유를 향한 대장정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미·중, 북·중 등 중국 대외관계 전문가다. 미국 웨슬리언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중국 베이징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안보정책연구소와 무역협회무역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고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팩트로 읽은 미중의 한반도 전략'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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