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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의 아이패치와 매의 뺨선 

입력
2021.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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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김영준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태양빛이 많은 지역에 서식하는 매의 뺨선은 태양빛이 적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굵은 것으로 나타났다. gayleenfroese2 ⓒPixabay

태양빛이 많은 지역에 서식하는 매의 뺨선은 태양빛이 적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굵은 것으로 나타났다. gayleenfroese2 ⓒPixabay


인류는 문명을 개척하며 자연환경과 생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1998년 상어 피부를 모방한 전신수영복 등장 이후 수영 신기록들이 경신되자 기술도핑이라는 말까지 나온 바 있었죠. 물총새 부리를 본떠 만든 일본 초고속열차 신칸센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렇게 첨단영역에서만 생물 모방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주변에도 있습니다.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테이프는 우엉 열매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게 되죠. 뜨거운 여름 프로야구 선수들은 눈 밑에 검은 아이패치를 붙이곤 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공을 태양 아래에서 찾으려면 눈부심은 최대의 적이거든요. 검정 무늬는 빛을 흡수하고 반사를 줄여 추적을 쉽게 만듭니다. 어찌 보면 야생동물에게서 그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에게도 눈부심은 불편하니까요. 특히 빠른 속도로 추적하는 맹금류에게 이 무늬는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태양복사가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는 지금까지는 없었지요.


우리나라는 태양빛이 많은 국가는 아니기에 뺨선은 얇아진다. ⓒ김영준

우리나라는 태양빛이 많은 국가는 아니기에 뺨선은 얇아진다. ⓒ김영준


이 연구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진들은 매라는 종을 선택했습니다. 매는 사막과 열대우림,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에 걸쳐 살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1급종과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죠. 주로 해안가나 개활지, 섬 등지에서 서식하며 다이빙 속도는 시속 350㎞에 이를 만큼의 빠른 속도로 비행과 사냥을 합니다. 따라서 빛이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지요. 비둘기나 도요물떼새 등 빠르게 나는 새들을 주로 사냥하므로 동체시력도 좋아야 하며 눈부심은 당연히 생존에 영향을 미치겠죠. 더군다나 매에게는 매우 진한 뺨선이라는 검고 굵은 무늬가 눈 밑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징에 착안하여 전 세계에 분포하는 매의 뺨선 길이와 너비, 두드러진 정도를 해당 지역의 기온, 강우량과 자연광량과 같은 기후 요소를 통해 연관성을 찾으려 했지요. 이 연구에서 시민과학이 빛을 냅니다. 연구자들은 코넬대학교 매컬리도서관의 이버드(eBird)와 전 세계 자연관찰을 기록하는 아이내추럴리스트(iNaturalist)를 통해 94개 지역과 국가의 위치기록이 있는 2,000장이 넘는 매 사진을 구했습니다. 태양복사가설이 사실이라면 태양빛이 많은 지역의 매는 보다 크고 어두운 뺨선이, 빛이 약한 지역에서는 더 가늘고 좁은 뺨선이 있어야 하겠죠. 그 결과, 예상한 바와 같이 기온이나 강우량보다는 복사광량에 따라 뺨선의 폭이 넓어진다고 나타났습니다. 호주나 동남아시아, 중미 쪽에 서식하는 매보다는 고위도인 몽골이나 러시아, 캐나다에 서식하는 매의 뺨선이 더 얇고 가늘었습니다. 그러니 스포츠 선수들의 검은 아이패치는 매우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연계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며 살아갑니다. 자연 보전이 개발보다는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 이유로 균형추 훼손을 반복합니다. 결국 탄소배출과 기후변화라는 어젠다가 현대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서보다 우리가 자연에게서 얻어야 할 게 아직도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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