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인권운동가 본보와 단독 서면인터뷰]?
①탈레반 집권 후 사람들 일자리 잃고, 은행 폐쇄
②여성 시위대에 '전선 채찍질'...허공 발포 위협도
③탈레반, '여성 인권 존중' 말보다 행동에 옮겨야
④국제사회 '아프간 인권상황' 조사와 기록도 필요
“탈레반은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
사미라 하미디 국제앰네스티 인권활동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출신 대표적 여성 인권운동가 사미라 하미디 국제앰네스티 남아시아 지역사무소 활동가(Regional Campaigner)는 이같이 단언했다. 지난달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 이후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근거로 여성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제한하고, 반대 세력에 잔인한 보복을 일삼는 등 탈레반한테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는 억압적·폭력적 방식으로 통치 체제를 재건하려 하는 탈레반을 국제사회가 결코 인정해 줘선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40대 초반인 하미디씨는 2006년 유엔개발계획에서 아프간 여성 인권활동가로 첫발을 뗐다. 이후 ‘아프간여성네트워크’ ‘아프간여성인권센터’ 등을 거쳐 2015년 유럽연합(EU) 아프간 자문위원, 이듬해 유엔 여성보호센터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2014년에는 아프간 내 ‘여성지식리더십기구’를 창설, 아프간 여성 인권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2018년부터 국제앰네스티 소속 아프간 인권활동가로 근무해 온 그는 현재 스리랑카 콜롬보에 있다. 아프간의 인권 실태조사 업무를 담당, 현지인들과 계속 소통하며 전 세계에 아프간 상황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본보는 16일 하미디씨와 서면으로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지 한 달째다. 현지 상황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아프간 국민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지난달 15일 이후 현지 상황은 급박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은행은 문을 닫았다. 특히 여성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커졌다. 인권활동가, 언론인, 소수 집단 등은 탈레반의 보복을 당할 위험에 노출됐다. 최근에는 학교들마저 문을 닫고 있고, 은행 폐쇄로 현금이 부족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
-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가 크다. 현지 여성들 상황은 어떤가.
“현재 아프간 여성 인권은 매우 심각한 위기다. 탈레반은 지난 20년간 여성의 사회참여와 처우개선 및 포용이 서구사회의 의제일 뿐이며,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는 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여성 관련 비정부 기구들도 문을 닫았고, 교사와 공무원, 경찰관, 변호사, 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집에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특정 언론매체에서는 여성의 언론 활동이 금지됐다. 여성이 이끌던 출판사들도 수색당하고,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현지 각 지역에서 여성 인권을 촉구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데.
“그렇다. 아프간 여성들은 과거에도 탈레반의 억압에 꾸준히 저항해 왔다.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했고, 다양한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 왔다. 이달 초부터 탈레반의 만행을 접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 아프간 여성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견문이 넓으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탈레반의 장악 직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사회적 참여가 활발했다. 대부분의 소녀가 학교에 다녔고, 다수가 대학에 진학했다. 아프간 국회(상원)의 27%는 여성 의원이었다. 경찰과 군대, 예술, 언론, 경제, 법조, 의료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여성도 많았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이들은 아프간 여성 인권 향상에 많은 공을 세웠다.”
-탈레반이 여성 시위대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 등 각 지역에서 여성 인권 존중을 요구하는 시위 여성을 전선으로 채찍질하는 영상 등을 확인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허공 발포도 하고 있다. 이런 사례만 봐도 탈레반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강제로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가.
“과거 집권 시기(1996~2001년), 탈레반은 아프간 여성에게 특히 엄격한 규제와 규칙을 부과했다. 여성 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
-아프간 재점령 후 탈레반이 과거와 달리 포용적 정부 구성과 여성 인권 존중을 약속했다. 탈레반의 변화 가능성은 있나.
“최근 탈레반이 과도정부를 꾸리기 위해 임시 장관 33명을 새로 임명했지만, 이 가운데 여성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탈레반은 여성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규제하고,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여성 인권을 존중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향후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탈레반이 바라는 국제적 정당성과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면 탈레반은 과거 정권에서 그랬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프간을 지배할 것이다. 탈레반은 충분히 폭력을 사용해 사람들이 인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을 것이다.”
-아프간 안정화를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아프간 현지의 협조자와 여성 활동가, 언론인, 소수집단 등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안전한 경로를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탈출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계획이나 전략도 없었다.
다만 국제사회는 아프간 국민에게 외교적 지원과 개발 분야에서의 지지와 함께, 탈레반이 인권을 존중하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탈레반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거나 포용하지 않으면 국가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했다. 이러한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고 지켜야 한다. 아프간 여성은 물론, 시민 전체의 인권 상황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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