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가장 장조다운 장조' E 장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통상 푸른색은 우울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순백을 머금은 푸른색은 밝고 희망차 보인다. 조성을 색깔에 비유하는 일을 즐겼던 러시아 작곡가 스크리아빈은 '푸르스름한 흰색(BluishWhite)의 조성'으로 자신의 역사적인 첫 교향곡을 썼다. 주인공은 E 장조였다.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장조가 밝은 기운을 들려주는 음악이라고 할 때 E 장조는 '가장 장조다운 장조'라고 볼 수 있겠다. 여러 장조 중에서 장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장재진 기자(장): 똑같이 미(E)를 '으뜸음'으로 하는 E 단조에 비해 E 장조의 경우 상대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느린 2악장에 쓰이면서 1악장과 극적 대비를 이루는 사례가 많다.
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은 C 단조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로 넘어가면 절망에서 벗어나 치유의 노래가 시작된다. 이 아름다운 음악이 E 장조로 쓰였다. 2악장 주제는 미국의 팝가수 에릭 카멘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에도 활용됐는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삽입곡으로 유명하다.
장: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도 비슷한 전개가 나타난다. 베토벤을 대표하는 조성인 C 단조로 무겁게 1악장이 시작되지만, 2악장에서는 돌연 E 장조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지금이야 이런 구조가 크게 이질적이지 않지만, 베토벤이 활동했던 18~19세기만 해도 큰 폭의 감정적 낙차는 그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겼을 듯하다. 다음 달 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코리아쿱 오케스트라와 이 곡을 연주한다.
지: 베토벤을 존경했던 브람스는 20여 년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 1번을 발표하며 E 장조를 곡에 포함시켰다. 앞선 협주곡들과 마찬가지로 C 단조로 시작하는 교향곡 1번은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에서 E 장조로 바뀐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강렬한 평화를 들려주며 1악장의 긴장을 완화한다. 만약 E 장조가 느린 악장이 아니라 빠른 템포로 연주된다면 관객의 기립박수를 유도하는 에너지를 뿜어내곤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피날레가 대표적이다.
장: 만약 딱 하나의 곡만으로 E 장조를 기억하고 싶다면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의 선율을 떠올려보자. 희망찬 봄의 약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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