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6>스페인의 문화예술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1879년 스페인 북부 산탄데르 지방의 영주인 돈 마르셀리노 자작은 자신의 어린 딸을 데리고 스페인 한 동굴 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작업이 지루했던 어린 딸은 동굴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그러다 우연히 동굴 벽에서 친숙한 형태를 발견했다. 바로 들소 그림이었다. 소녀는 “아빠 소예요”라고 외쳤다.
자작이 램프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수많은 들소 그림들이 동굴 천장에 그려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치 어제 그린 것처럼 색채가 선명하였고, 심지어 자신의 작품임을 뽐내기 위해서인지 손바닥 서명도 남겨져 있었다. 이렇게 우연히 발견된 동굴벽화가 인류 최초의 회화 작품 중 하나인 후기 구석기 시대 벽화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이다.
선조부터 내려온 스페인의 남다른 예술역량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예술 분야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보이는 남다른 역량이 어쩌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한다. 스페인의 탄생은 두 민족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베로족은 기원전 10~3세기경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와 주로 반도의 남부와 동부의 해안지대에 거주하다,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해 프랑스 남부까지 올라갔다.
이베로족은 별도의 민족을 지칭하기보다는 지중해 연안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비슷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서로 빈번히 교류하였고, 이 때문에 종교, 생활풍습, 언어 등이 유사하게 되었다. 현재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Iberia)라는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베로족의 특성이다. 많은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여타 부족들이 특정 지도자에게 충성하면서 진화 발전해 오는 경로를 걸어온 데 반해, 이베로족의 경우 규칙이나 규율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 지금도 스페인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중앙 정부에 구속되지 않고 지역주의가 강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통념과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기질, 누군가 제시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탈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려는 기질은 스페인 문화예술 발달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스페인의 토대가 된 또 다른 민족으로는 범유럽적 민족이라 할 수 있는 켈트족이다. 켈트는 철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수공예 기술이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켈트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온 시기는 기원전 6세기경이다. 켈트족은 이베리아 반도에 다양한 장식으로 치장된 금과 청동으로 만든 목걸이 등을 유물로 남겼다. 이처럼 높은 문화예술적 기질을 가진 두 민족에 기원한 스페인이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국가로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지리적 요충지로 여러 문화 수용
스페인 사람들의 남다른 기질들이 지속적으로 발현될 수 있게 해준 것은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동서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고 있고, 남북으로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이 덕분에 스페인은 무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지중해는 물의 평야라 불릴 정도로 물결이 잔잔해 항해가 용이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바닷길을 이용해 여타 문명과 빈번한 교류를 시도할 수 있었다. 화약, 나침반, 인쇄술 등 아시아의 여러 발명품과 문화예술품을 유럽으로 전파한 통로가 된 것도 지중해이며, 아라비아·중동 지역 및 인도 지역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유럽에 전달한 것 역시 지중해 지역이다. 특히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독특한 감수성마저 가장 초기에 접한 국가라 할 수 있다.
대신 이민족의 침략도 빈번히 받아야 했다. 교통의 요충지라는 의미는 다른 민족들도 쉽게 침입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초창기 스페인을 가장 먼저 점령한 이민족은 로마인들이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1세기에 이베리아 반도 전역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기원전 38년에 스페인의 로마제국 편입령을 발표했다. 그 뒤로는 5세기 초반 게르만족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410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해 300년간 통치했다. 이민족의 스페인 점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베르베르족과 일부 아랍귀족으로 구성된 이슬람교도들이 침공하여 무려 800년간 스페인 지역을 통치한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은 로마, 게르만 등 유럽 각 지역의 문화가 중동·아랍 민족의 감수성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특히 스페인은 이민족으로부터의 점령기간이 몇 세기에 걸쳐 길었다. 이러한 장기간의 점령기간은 다른 문명권의 문화적 자양분이 스페인 국민들에게 이식되기에 충분한 기간으로 작용하였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다양한 나라와의 빈번한 교역은 문화·예술 분야에 지속적인 영감을 주었던 듯하다. △페키니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서고트족 △유대인 △무어인 등 서로 다른 민족과 △가톨릭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가 유입되어 그들 나름의 독특하고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즉, 다양한 이국적 문화들이 스페인 내부에 융합되어 다른 유럽 국가에서 볼 수 없는 문화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유럽 지역의 복식문화의 전형이 이루어진 것은 르네상스 이후 광범위한 지역과 여러 국가 간에 무역이 확대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스페인이 전 유럽의 패션을 주도하였다. 스페인이 식민지로 점령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각 지역의 이국적인 풍미가 더해져 스페인의 문화예술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아메리카 부족들로부터 받은 독특한 감수성을 의복에도 발현하여 스페인풍 패션이 본격적으로 유럽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도 라틴아메리카 룩이라는 용어는 현대패션 용어로 고착되었다.
문화예술을 활용해 위기를 기회로
현대에 와서도 문화예술은 스페인 국민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들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문화예술을 활용해 국가적 고민들을 해결하곤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원래 빌바오(Bilbao)시는 700년 역사를 지닌 스페인 대표 산업도시였다. 하지만 1970년대 산업과 물류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6년에는 실업률이 26%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산업도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다 보니 인근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어 대기오염, 수질오염 문제마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점차 몰락해 가던 빌바오 도시를 살리기 위해 스페인 국민들이 선택한 방식은 다름 아닌 문화예술이었다.
1992년에는 공공자금의 지원을 받는 도시개발공사 '빌바오 리아 2000(Bilbao Ria 2000)'을 창설하고 도시의 가장 낙후된 지역에 상업,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비즈니스센터를 조성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도시가 산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 변모하였음을 대외적으로 알리기로 결정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은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상징적 조형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빌바오시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침체된 산업도시 빌바오를 일약 문화예술도시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 후 1년 만에 예상 방문객의 3배에 달하는 연간 관광객 130만 명이 몰려들어 1억6000만 달러의 수입을 창출해 일명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라고 부를 정도로 지역 혁신에 거점 역할을 수행하였다.
전통시장 활성화 내지 도시재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스페인은 문화예술을 활용하였다. 일례로 1800년대 중반 문을 연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San Miguel) 시장이 대형마트 등의 대두로 소멸 위기에 처한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 소멸 위기라고 해서 이를 허물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짓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의 문제해결 방식이 아니다. 그들은 산 미구엘 시장의 기둥, 철재 골조를 그대로 살린다. 그 위에 사면을 외벽 통유리로 마감해 안쪽이 투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의 가장 큰 단점이 천장이 없어 비를 맞으며 쇼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극복하기 위해 천막을 설치했다. 그리고 천막을 현대적인 감각의 회화로 표현해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산 미구엘 시장은 연간 400만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오! 스페인이여! 서양과 인도 사이에 펼쳐 있는 모든 나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너는 분명히 여왕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페인은 국가 자체가 문화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가 향후 스페인 발달에 어떻게 기여하게 될지 기대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