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경쟁의 서막일까, 대화 재개의 변곡점일까.”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언사까지 비난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남북이 같은 날 탄도미사일로 맞붙은 형세만 보면 대결 국면이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북한은 남북ㆍ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군사적 압박을 수단으로 삼은 몇 가지 단서를 남겼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5일 밤 문 대통령의 ‘도발’ 발언을 겨냥해 발표한 담화의 수위는 이전처럼 거칠기 짝이 없었다. 국가 정상을 향해 “우몽(어리석음)하다”란 무례한 표현도 동원했다. 그러나 담화 내용 전체를 뜯어보면 탄도미사일 발사의 근거를 열거한 일종의 ‘설명자료’에 가까웠다.
북한은 무엇보다 탄도미사일을 쏜 배경을 우리 국방부가 얼마 전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에서 찾았다. 김 부부장은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의 첫 해 중점과제 수행을 위한 정상적이며 자위적인 활동”이라고 했다. 이 계획은 올해 1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공표한 내용이다. 국방계획에 의거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진행한 남측처럼 북한의 군사행동 역시 미리 짜인 ‘시간표’에 따라 이뤄진 정당한 국정 수행이라는 주장이다.
호칭에도 신경을 썼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실명 비난한 건 이례적이다. 앞선 담화들에서는 주로 대통령보다 격하된 호칭인 ‘남조선 당국자’로 부르거나, 심지어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등 원색적 비유를 썼다. 반면 전날 담화에선 문 대통령을 여러차례 ‘대통령’으로 지칭했다. 또 노동신문 등 북한 주민들이 접하는 대내용 매체에는 김 부부장의 비난 담화조차 실리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지 않은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날 훈련은 박정천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지휘를 맡았다. ‘포 전문가’이자 ‘군 서열 1위’ 인사를 앞세워 대결 목적이 아닌 국방력 강화를 위한 통상적 군사훈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탄도미사일의 비행거리가 여전히 ‘단거리(800㎞)’였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올 3월 시험발사 때보다 200㎞ 늘었지만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둘 정도는 아니다. 탄도미사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이나 미국을 직접 겨냥한 게 아니어서 추가 제재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으로 보인다. 저강도 무력시위를 통해 최대한 미국을 압박한 뒤 북미협상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노림수가 묻어난다. 실제 미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면서도 “‘외교적 접근’이라는 기존 대북정책 원칙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 역시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응은 하되, ‘인도적 지원’ 등 추진 중인 정책 프로세스는 계속 가동할 방침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6일 취재진에게 “(김 부부장 담화에)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대화와 협력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갑수 평화외교기획단장 등 외교부 당국자들도 이날 방한 중인 정박 미 대북특별부대표와 만나 대북 인도적 지원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군사 기술력 향상에 필요한 군사행동을 몇 차례 더 할 수 있다”며 “정치적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적기를 저울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