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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맛이 없어지는 건 기대의 노화다

입력
2021.09.22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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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언
최낙언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명절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명절증후군'이다. 주부는 '끝없는 음식 준비', '놀기만 하는 남편', '시부모의 잔소리'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남편과 자식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명절이 사라지면 과연 스트레스만 사라질까? 추억과 시간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들면 점점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기 쉬운데 그 이유는 기억이 줄어들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이 때는 '기억(경험)'이 별로 없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새로운 것은 잘 기억된다. 기억이 많으면 그만큼 시간은 느리게 느껴진다. 성인이 되면 이미 수많은 '기억(경험)'이 있어서 대부분의 상황은 예측이 가능해 대처는 쉽고, 놀라움은 줄어든다. 특별하지 않으니 기억하지 않고, 기억이 없으니 일주일을 돌아보고, 한 달을 돌아봐도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이 그날이 그날 같고 그만큼 시간이 빨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에 명절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기대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줄어들기 쉽다. 여기에는 감각의 노화도 역할을 하지만 기대의 노화가 더 큰 문제다.

사실 우리의 감각이 아무리 노화되어도 맛의 즐거움을 누리기에는 충분하고, 미각과 후각은 꼭 예민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쓴맛과 이취 때문에 싫어했던 음식도 감각이 적당히 노화되면 오히려 즐길 만한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기대의 노화이다. 나이가 들면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의 맛도 예측을 잘하게 되고, 예측한 대로의 뻔한 맛이 되기 쉽다. 그만큼 놀라움과 즐거움도 줄어들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흥미만 잃지 않으면 우리의 감각은 음식을 즐기고 추억을 쌓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추억과 기억이 많아지면 그만큼 시간은 느리게 흐르게 된다.

명절을 틀에 박힌 형식과 음식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이 같이 즐기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감각을 잘 활용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법을 찾는 것이 시간을 늘려 오래 사는 방법이다. 새로움이 사라지면 기억이 사라지고, 기억이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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