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률, 퇴사율, 이직률.
회사를 관두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지난 21일 채용정보업체 '사람인'은 53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올 상반기 퇴사율이 15.7%였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업 종사자가 1,000명이라면 157명이 올 상반기에 퇴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퇴사율은 특정 기간 동안의 종사자 대비 퇴직자 수로 계산합니다. 기간은 대개 1년(12개월)입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적용하기 애매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쿠팡입니다.
2020년 쿠팡 퇴사율 93.4%... 500대 기업은 39%
한국일보는 지난 16일 '[단독] 100% 직고용이라더니... 쿠팡 평균 퇴사율은 '76%''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이 기사에서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쿠팡 주식회사(배송)와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물류센터)의 고용보험 취득자가 총 8만9,330명, 상실자가 6만7,696명이어서 고용보험 해지율(퇴사율)이 75.8%라고 했습니다. 전체 피보험자(종사자)가 아닌 취득자 수를 기준으로 퇴사율을 계산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쿠팡은 피보험자와 취득자가 엇비슷하거나 되레 취득자가 많았습니다. 가령 2020년 쿠팡의 월 평균 피보험자 수는 2만8,910명인데 연간 고용보험 취득자 수는 3만874명에 달했습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채용 인원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피보험자 수와 상실자 수를 근거로 퇴사율을 계산하면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피보험자 수를 기준으로 계산한 쿠팡의 퇴사율은 △2020년 93.4% △2019년 96.1% △2018년 110.8% △2017년 71.4%입니다. 2018년을 보면, 한 해에는 평균 종사자 수보다 더 많은 숫자가 퇴사해버린 것이죠.
그래서 택한 것이 2017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취득자 수와 상실자 수를 모두 더한 방식이었습니다. 쿠팡 근로자 대부분이 근속기간 24개월 미만의 계약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3년 반'으로 집계 기간을 늘려 취득자 대비 상실자 수를 계산하면 '퇴사율'로 볼 수 있지 않겠냐는 판단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산한 퇴사율은 75.8%였습니다. 기간별로는 △2021년 상반기 87% △2020년 87.5% △2019년 78.5% △2018년 72% △2017년 65.3%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피보험자 수를 기준으로 한 수치보다 더 낮은 퇴사율이 나온 것입니다.
대기업 퇴사율이 더 높다는 쿠팡
쿠팡은 이 기사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취득자 수와 상실자 수를 비교해 퇴사율을 집계한 것 자체가 '통계 오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 상반기 국내 500대 기업의 국민연금 신규 가입자 수가 13만328명, 상실자수는 12만5,069명인데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퇴사율이 95%라는 것입니다. 국내 4대 기업 중 3곳의 퇴사율이 100%가 넘는다고도 했습니다.
쿠팡의 이런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당혹스럽습니다. 우선 고용보험이 아닌 국민연금 가입·상실자 수를 예시로 든 점입니다. 국민연금은 퇴사율을 계산할 때 근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퇴사해도 지역가입으로 전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퇴사자를 집계하는 데 유용한 통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급히 반박을 하려다 범한 '실수'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듯 쿠팡의 지적을 수용하면 퇴사율은 훨씬 올라갑니다. 2020년 퇴사율은 87.5%가 아닌 93.4%, 2019년은 78.5%가 아닌 96.1%, 2018년은 72%가 아닌 110.8%, 2017년은 65.3%가 아닌 71.4%가 됩니다. 쿠팡이 예로 든 것처럼 500대 기업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2020년 500인 이상 사업장의 총 피보험자 수는 335만3,842명, 고용보험 상실자 수는 130만7,347명으로 퇴사율은 39%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은 36%, 2018년은 36.9%, 2017년은 35.9%였습니다. 쿠팡 퇴사율과 비교해보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매년 종사자 숫자만큼 퇴사하는데... "국내 고용 3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쿠팡의 퇴사율을 파고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쿠팡은 지난 6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5만3,899명을 돌파해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 3위 고용기업이라고 홍보했습니다. 올해 초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 이후에는 "과거 삼성과 현대가 그랬던 것처럼 최근에는 쿠팡이 유일하게 '고용을 동반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고용하는지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공시한 고용현황 자료에도 정규직과 계약직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고, 일용직(단기직) 숫자는 아예 집계도 되지 않습니다. 별도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한, 고용보험 가입자와 상실자 숫자를 통해 계약직 비중을 추론할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이번 통계를 통해 다시 한번 '쿠팡식 일자리'의 단면이 확인됐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쿠팡이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며 직고용을 홍보하고 나섰지만 비정규직 사용비율이 너무 높고 정규직 전환도 거의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시장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간다는 건 쿠팡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방증"이라며 "인력시장처럼 정말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을 안 좋은 일자리에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쿠팡식 일자리의 민낯"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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