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개장
미중 갈등 최고조 시점에 할리우드 문화 공습
중화민족 자부심에 외세문화 배격 풍조 불구
"중국의 발전, 개방적·포용적 태도 입증" 환호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대사로 부임하기 전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13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무역전국위원회 주최 행사. 친강 주미 중국대사는 미국 재계 인사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개장을 앞둔 베이징의 테마파크에 초청받은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는 “가장 자극적인 놀이기구인 트랜스포머라는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궤도의 굴곡이 심해 최근 수년간의 미중 관계를 떠올렸다”며 “무척 긴장됐지만 모두 감당하며 무사히 통과했기에 앞으로 어떤 시련에 맞닥뜨려도 여러분과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친 대사가 찾은 곳은 ‘베이징 유니버설 스튜디오’다. 일주일 지나 20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미국 문화와 자본주의가 응축된 곳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오사카, 싱가포르에 이어 세 번째로 베이징에 선보였다. 면적은 4㎢로 중국이 세계 최대 테마파크라고 자랑하던 상하이 디즈니랜드(1.16㎢)보다 세 배 이상 넓다.
베이징시는 2001년 유니버설과 테마파크 조성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위원회 의원단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때 미국의 적극적 지원으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무사히 가입했고 이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양국의 우호적 관계 덕분이다.
하지만 사업이 완성되기까지 20년이나 걸렸다.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의미다. 그사이 국면이 바뀌어 하필 양국이 전방위로 충돌하며 격렬하게 맞붙을 때 결실을 맺었다. 험악한 상황에서 미국 색채가 가장 강한 문화레저시설이 중국 수도 베이징 한복판에 들어섰다. 나이키 등 온갖 서구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며 중화민족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베이징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어색해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반응이 예상 밖이다. “남쪽에는 홍콩과 상하이 디즈니랜드, 북쪽에는 베이징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다”며 “이들 3개의 대형 테마파크는 중국 대외개방의 이정표”라고 띄우는 데 여념이 없다. 마치 삼국지의 ‘천하삼분지계’를 연상케 한다. 민족주의 성향 매체 환구시보조차 “유니버설 스튜디오 개장은 중국의 발전이 세계와 융합하는 과정”이라며 “서구 문화에 대한 중국 사회의 개방적이고 우호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치켜세웠다.
중국은 새로 지은 테마파크를 미국과 접촉면을 넓히는 기회로도 활용하고 있다. 과거 농업과 제조업에 국한된 미중 협력의 범위가 서비스업으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친 대사의 공치사가 빈말은 아닌 셈이다. 중국신문망은 “중국과 경제적 디커플링(상호의존 단절)을 주장하는 미국 일부 정치인들의 환상을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깨뜨렸다”며 “중국 저가상품이 미국 소비자의 수요에 부응했다면 이제 미국 문화가 중국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때”라고 평가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단연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관광지로 꼽혔다. 개장과 동시에 일약 중국 관광산업의 척도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당국은 테마파크 영업수익 100억 위안(약 1조8,300억 원)을 포함, 인근 숙박·음식업 매출과 특화단지 조성 등을 통해 매년 200억 위안 넘는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은 2018년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미국과의 사이가 급속히 틀어졌다. 애국심을 앞세워 미국을 배격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미국 제품 사랑은 막지 못했다. 미국의 회원제 대형 유통체인 코스트코가 2019년 8월 상하이에 중국 1호점을 열자 고객들이 몰려 3시간 만에 물건이 동나 문을 닫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기업은 중국에서 떠나라”고 엄포를 놨지만 소비자들은 아랑곳없었다. 지난해 8월 베이징 번화가 산리툰에 미국 햄버거 체인 쉐이크색(Shake Shack·일명 쉑쉑) 버거가 개점했을 때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4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며 미국 본고장의 맛을 즐겼다. 대중의 기호와 선택이 공산당과 정부가 강조하는 중국인의 단결과 정체성을 넘어섰다.
이 같은 열기가 고스란히 베이징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옮겨붙었다. 개장일 입장권 5만여 장은 예매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 주말 입장권이 10만 원을 훌쩍 넘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텅쉰왕 등 중국 매체들은 “다가오는 10월 국경절 연휴 때 관람객 1인당 지출액이 평균 3,000위안(약 54만 원)을 족히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4인 가족이 하루 나들이하려면 중국 대졸자 초임 평균(6,000위안)의 두 배를 내야 한다. 상당수 서민들은 감당하기 버거운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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