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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드디어 집으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시진핑 주석에게 감동받았다.”
25일 붉은 원피스를 입고 국적기에서 내린 멍완저우(49) 화웨이 부회장의 귀국 일성은 14억 명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인민해방군 출신 런정페이(77) 화웨이 회장의 딸인 그는 미중 갈등이 커진 2018년 12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지 2년 9개월 만에 풀려나 귀국했다. 공항에 몰린 인파가 가곡 ’가창조국’을 합창하며 열기는 더 달아올랐다. 토요일 밤 10시라는 시간에도 마치 영웅이 귀환한 듯 생중계됐다. “어떤 세력도 중국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당이 영도하는 강대한 중국은 인민들의 가장 강력한 보장”이란 격문과 선동이 이어졌다.
□ 중국은 마치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떠들썩하지만 중국도 캐나다인 2명을 이날 석방했다. 멍 부회장 체포 직후 중국 당국에 붙잡혀 억류돼 있던 캐나다 국적의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와 외교관 출신 마이클 코브릭도 풀려나 고국으로 갔다. 인권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인질을 맞바꾼 것일 뿐 미중 화해의 신호탄으로 볼 순 없다는 지적이 우세한 이유다.
□ 사실 화웨이 입장에서 보면 참혹한 패배에 가깝다. 미국의 의도는 화웨이가 전 세계적으로 5G 통신 네트워크 주도권을 장악하는 걸 막는 것이었다. 미국의 제재 후 화웨이는 핵심 반도체 부품을 구하지 못해 통신장비 사업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20%에 달했던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도 4%로 뚝 떨어졌다.
□ 오히려 미국은 대중 봉쇄를 더 촘촘히 짜고 있다. 전날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쿼드(Quad) 4개국 정상은 백악관에서 첫 대면 회의를 가졌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외쳤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압박이다. 정상들은 협력 분야를 반도체 공급망 강화, 5G 파트너십 구축, 우주 분야까지 확대했다. 앞서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동맹 오커스(AUKUS)도 출범했다. 이런 사실에도 중국 매체들은 멍 부회장의 귀환을 '중국공산당의 위대한 승리'라고 포장하고 시 주석 장기 집권의 정당성으로 연결한다. 중국식 국수주의 광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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