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쓰레기 생산 세계 2위국의 고민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높이 50m, 최대 한계치에 도달했다. 일일 용량도 초과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자카르타포스트
현지 기사를 보고 그 산을 다시 올랐다. 2년 만에 산은 10m나 높아져 있었다. 아파트 17층 높이(약 50m)로 고개를 한참 젖혀야 시야가 정상에 닿는다. 흘러내려 질퍽하게 고인 물웅덩이를 가로지르는 스티로폼을 밟고 조심스레 등산을 시작했다.
악취는 정상으로 나아갈수록 달라졌다. 무언가 썩는 냄새가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코를 제아무리 움직여도 악취를 피할 수 없었다. 발 디딜 때마다 기분 나쁜 냄새가 치솟았다. 들러붙는 파리떼와 오염된 공기 탓인지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산은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었다. 평평한 땅마다 천막이 늘어섰다. 간이식당, 그늘 쉼터, 쓰레기 분리대 등 용도가 다양하다. 넝마주이들은 옹기종기 식사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광주리에 담아 온 쓰레기를 부린 뒤 분류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도 눈에 띄었다. 2년 전 산 중턱에서 만났던 이리나(46)씨는 광주리를 내려놓은 채 "또 왔냐"면서 웃었다. "별일 없느냐"고 물었더니 "똑같다"며 또 웃었다. 옷차림도, 그 환한 웃음도 여전했다.
동남아 최대 쓰레기산을 다시 오르니
중턱 곳곳에 자리 잡은 굴착기가 쓰레기를 위로 던지거나 헤집고 있었다. 그 주변마다 넝마주이 대여섯 명이 굴착기가 떨어뜨린 쓰레기 더미에서 열심히 돈 될 만한 것들을 줍고 있었다. 흡사 대형 초식동물 주위에서 먹이를 찾는 새떼 같았다. 이르판(34)씨는 "사람 힘으로는 파낼 수 없는 물건들이 나와서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조심하라"고 했더니 "많이 해봐서 위험하지 않다"며 엄지를 세웠다.
정상을 10m 정도 남겨 둔 지점부터 발 딛기가 쉽지 않았다. 다져진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발이 푹 빠지거나 미끄러졌다. 몸을 바짝 낮추고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넝마주이들이 "저기를 보라"고 외쳤다. 뒤돌아 아래를 쳐다보니 경비원 서너 명이 내려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어차피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발걸음을 돌렸다. 넝마주이 두어 명이 곁을 지나 빠르게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등산부터 하산까지 30분가량 걸렸다. 그것도 산이라고 몸은 땀범벅이 됐고, 허벅지와 종아리는 욱신거렸다. 경비원이 타박했다. "쓰레기 더미가 무너지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넝마주이가 아니면 함부로 올라가선 안 된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두 번이나 완등하지 못한 이 산은 동남아시아 최대 쓰레기산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서부자바주(州) 브카시에 있다. 자카르타에서 수거한 온갖 쓰레기가 쉬지 않고 모인다. 오가는 길은 육중한 쓰레기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종일 막힌다. 자동차로 편도 1시간 넘게 걸린다.
반타르 그방(bantar gebang) 통합쓰레기처리장(TPST)이 정식 명칭이다. 1989년 설립된 이곳의 전체 부지 면적은 110.3ha, 이 중 8할(81.91%)이 산만 한 매립지다. 쓰레기 위에 다시 쓰레기를 쌓고 있다. 쓰레기 압력 탓에 길이 뒤틀려 일반 차량 출입이 통제되는 곳도 있다.
넝마주이들은 "쓰레기산은 10개가 넘는데 아직 쓰레기를 더 쌓을 수 있는 4곳만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루 6,000~7,000톤이 모이던 쓰레기는 최근 7,400톤으로 급증했다. 인도네시아 쓰레기 문제의 실상을 에누리 없이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산처럼 솟아오른 대규모 매립장이 57곳이나 있다.
2,800만 명 먹일 음식이 쓰레기로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국가다. 2017년 기준 1인당 연간 쓰레기 발생량이 300㎏으로 사우디아라비아(427㎏) 다음으로 많았다. 미국(277㎏)과 아랍에미리트(196㎏)가 뒤를 이었다. 정부가 자체 집계한 통계도 암울하다. 환경산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전체 쓰레기는 6,780만 톤이었다. 2억7,000만 인구가 매일 약 18만5,753톤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1인당 하루 쓰레기 배출량은 0.68㎏이다.
특히 전체 쓰레기의 절반가량(46.75%)이 음식물 쓰레기다. 인구의 10% 남짓인 2,800만 명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여전히 이 땅의 기아 수준이 높고, 대부분의 음식물 쓰레기가 유통 과정과 가정에서 버려지는 걸 감안하면 아이러니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환경 파괴도 심각하다. 반타르 그방 쓰레기산도 음식물 쓰레기 천지다.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니다. 폐기물 자원화 등 쓰레기 처리에 공을 들이고, 재활용 증대를 위한 쓰레기은행 사업 및 분리 수거, 비닐 포장 줄이기, 해양 쓰레기 최대 70% 감축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반타르 그방 TPST는 쓰레기를 골라 퇴비로 만드는 공장과 매립가스(LFG)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넘쳐 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엔 용량이 적다. 정부가 LFG 발전소 등을 추가 건립하기 위해 해외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으나 아직 도드라진 성과는 없다.
무엇보다 취약한 시스템이 화를 키운다. 분리 수거는 구호에 그치고, 거리에 놓인 재활용 쓰레기통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쓰레기를 애써 종류별로 나눠 내놓아도 수거할 때 모두 섞어서 가져가는 식이다. 기자 역시 여러 번 분리 배출을 시도하다 포기했다. 인도네시아의 쓰레기 분리 수거 정책은 2012년 '절약(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 3R를 기본으로 만들어졌지만 10년 가까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 쓰레기 재활용률은 11%에 그친다. 시스템이 받쳐 주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무력한지 실감하게 된다.
사실상 분리 수거는 쓰레기산이 삶의 터전인 넝마주이들의 생계 수단이다. 반타르 그방에만 약 1만 명의 넝마주이가 있다. 아이들도 동원된다. 쓰레기 분리 수거업자 수산토(32)씨는 "넝마주이가 헤드램프를 끼고 밤늦게까지 재활용 쓰레기를 골라서 수거업자에게 넘기면 하루 10만 루피아(약 8,000원)를 번다"고 했다.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넝마주이를 차츰 줄여 2025년까지 각 가정의 분리 수거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고 하지만 시스템이 받쳐줄지 의문이다.
시스템 부재에 편승한 개인의 무분별한 쓰레기 불법 투기도 난제다. 길에 버리는 것도 모자라 강에 온갖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던진다. 자카르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 120㎞의 칠리웅(Ciliwung)강은 넘쳐 나는 쓰레기 탓에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강으로 통한다. "가장 많은 쓰레기는 칠리웅강에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고백처럼 사진을 보면 강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쓰레기 강은 바다로 흘러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결국 인간에게 해를 미친다. 인도네시아 바다에 버려지거나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만 연간 320만 톤에 달한다.
쓰레기 위에 심는 나무
며칠 뒤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인도네시아 대표 한상 기업이 10년 넘게 버려진 쓰레기 매립장 7ha를 대상으로 도시숲 시범 조림에 나선 것이다. 코린도그룹 임직원과 보고르 주민들은 25일 자귀나무의 열대 수종이라 할 수 있는 콩과 식물 셍온(sengon) 묘목 300개를 2,700㎡에 심었다. 셍온은 임학과 출신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잎은 염소에게 먹이고 목재로도 인기가 높으니 적극 심으라"고 추천한 나무다.
묘목을 심기 위해 파낸 자리에는 비닐 등 쓰레기가 가득했다. 길이 40~50㎝인 셍온 묘목이 쓰레기 위에서 20m까지 잘 자라면 도시의 탄소를 흡수하는 숲으로 바뀔 것이다. 거대한 쓰레기산도 출발은 누군가 버린 쓰레기 하나이듯, 이를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게 하는 시작은 나무 한 그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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