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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반도체는 대통령이 챙긴다

입력
2021.09.30 18: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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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부, 반도체 기업에 영업기밀까지 요구
미중 경쟁하에서 '반도체=안보' 인식
우리도 대통령, 대선후보들 직접 챙겨야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업체 CEO화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업체 CEO화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귀사가 생산하는 제품 목록, 제품별 최근 2년 판매실적과 올해 예상매출, 주문잔량을 적시하십시오. 귀사 거래처 가운데 상위 3사는 어디이며 매출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귀사 제품이 주문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 최근 생산지연 이유 등을 설명하십시오. 제품별 재고현황, 수주액과 출하액 비율은 얼마나 됩니까. 현재 가용생산능력은 어느 정도이며 향후 증설 계획이 있습니까.

미국 상무부가 9월 24일자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한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에 관한 의견요청 공지문'에 담긴 질문들이다. 질의 대상은 반도체 설계·생산·조립·유통업체와 중간·최종 사용업체, 쉽게 말해 반도체와 관련된 모든 기업으로 11월 8일까지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당연히 포함된다.

질의 항목만 무려 26개다. 얼핏 봐도 영업비밀에 속하는 내용이 많다. 세무조사나 수사가 아닌 담에야 기업들로선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기업에 이런 자료를 요구했다면 당장 '관치시대, 독재정부 때도 이러진 않았다'는 반응이 나왔을 거다.

물론 자료 제출이 의무라는 말은 없다. 비공개를 원하면 '대외비' 표시를 하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비공식 요청도 아니고 관보를 통해 공개 요구했는데, 어떤 기업이 거부할 수 있겠나.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로이터, 블룸버그 등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업들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수단이 있다"고 말해 자료 요청이 '부탁'이 아니라 '지시'임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이 갑자기 거칠어진 것은 아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부터 주요 산업에 대한 개입적 태도는 준비된 작전처럼 매우 일관성 있게 고조되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인 2월 24일 행정명령을 통해 향후 100일 이내에 반도체, 배터리, 희소광물, 의약품 등 4대 품목에 대한 공급망 정밀조사를 지시했다. 이어 반도체 기업 회의를 소집해 협조를 요청했고, 삼성전자는 미국 공장 설립 계획을 선사했다. 6월8일 행정명령에 따른 100일 조사보고서가 발표됐는데, 해외 이전과 투자 부진 등으로 인해 미국 내 공급망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며 이는 경제안정과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이번 답변 요구도, 너무 샅샅이 보려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은 공급망 재건작업의 일환인 셈이다.

핵심은 미국이 반도체를 안보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반도체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자동차를 비롯해 경제도 타격을 입지만, 더 크게는 첨단 방위체계에 구멍이 생긴다. 특히 미국 내 생산은 점점 줄고 중국 비중은 높은 현 반도체 공급체인을 그대로 둔다면, 미국은 주적인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것이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중 경쟁이 계속되는 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압박은 점점 가중될 것이다. 그리고 곧 배터리, 희소자원에 대해서도 그렇게 나올 것이다. 중국도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할 게 뻔하다. 이렇게 미중이 첨단산업, 첨단기술을 안보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반도체연대협의체가 최근 발족됐고,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도 곧 신설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불충분하다.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대외적 레버리지를 갖은 유일한 분야다. 경제부처 외에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이 모두 나서야 할, 결국 대통령이 끌고가야 할 사안이다.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심지어 반도체 기업 회의까지 직접 참석하지 않았나. 확 와 닿지는 않겠지만 대선 후보들도 관심을 갖고 꼭 언급해야 할 이슈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성철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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