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곤충은 겹눈입니다. 수많은 낱눈으로 들어온 영상을 모아 사물을 모자이크로 식별합니다. 사람의 눈보다 넓은 시각, 더 많은 색깔 구분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선 레이스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거칠고 복잡한 대선판을 겹눈으로 읽어드립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악재와 호재는 생물(生物)이다. 변화무쌍하게 진화, 변이를 거듭한다. '한국일보'가 'LIVE ISSUE'로 묶어놓고 있는 대장동 이슈가 딱 그렇다. 지난달 30일 민주당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대장동 이슈가 민주당에 호재일까?'라는 질문에 이재명과 추미애는 "그렇다"고 답했고 이낙연과 박용진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대법관과 검사장을 망라하는 전관 법조인들, 전문 변호사와 회계사 등 부동산 개발 전문가들, 법조 출입으로 잔뼈가 굵은 언론사 간부들, 검찰 간부와 민정수석을 지낸 야당 의원, 리모델링 조합장 출신 토착 인사가 주·조연으로 등장하고 전주(錢主)로 재벌 일가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기득권을 총망라하는 대형 스캔들이다. '흙수저' 출신에 '기득권 타파'를 내세우는 이재명 후보에게 호재라 할 만하다.
그런데 대장동은 성남에 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이었다. 여러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누가 봐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 실무를 책임졌다. 본인이 오랫동안 이 사업을 치적으로 자랑했고 이번 사건이 불거진 직후에도 "대장동 사업의 설계자는 나"라고 밝혔다.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힘있는 슬로건이 악재가 된 셈이다.
선거전은 대체로 제로섬 게임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자가 이 이슈로 득점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해 보이는 문제 제기에도 "지금 저쪽 편 드느냐"라는 역공이 오히려 먹힌다. 진영논리와 보호정서가 힘을 발휘해서다. 진영의 울타리가 무너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소 논조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 사안에 달려들어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다. 야당은 총력을 기울여 공세를 펴고 있다.
여야 전선에서도 이 지사가 아직은 큰 타격을 입진 않고 있다. 시행업체 ‘1호 사원’이라는 야당 의원 아들의 50억 원 퇴직금은 강렬하다. 야당 지도부가 내홍에 빠졌다. 주연 인물의 누나가 야당 선두주자 윤석열 후보의 아버지 집을 매수한 사실도 불거졌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시계제로의 상태다.
이렇다 보니 "제2 수서 사태와 맞먹는 정관계 로비 부패 아수라장"이라는 민주당 박용진 경선 후보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1991년 2월 불거진 이 사건은 청와대와 당시 야당인 평화민주당이 서울시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는 언론의 특종 보도로 불이 붙었다. 처음부터 여와 야가 함께 엮였다.
'신속한 수사' 끝에 검찰은 한보그룹이 전방위적으로 뇌물을 살포한 사실을 밝혀내고 정태수 회장과 여당 의원 1명, 야당 의원 1명, 청와대 전 비서관 1명 등을 골고루 구속시키면서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외압의 실체를 밝히진 못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사과 담화를 발표하는 등 청와대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 소속 의원의 주선으로 주택 조합원들을 만나 지원을 약속한 사실도 드러나 여야 득실 계산이 어렵게 됐다. 수서와 무관해 여권 내 위상이 높아진 김영삼, 청와대 압력에도 도장 찍기를 거부하다가 서울시장 자리에서 쫓겨난 사실이 드러난 고건 정도가 '간접적 수혜자'였다.
남은 진실은 대통령이 바뀐 이후인 1995년에 드러났다. 검찰이 다시 수사해 보니 정태수 회장이 150억여 원의 비자금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주자 청와대가 서울시에 압력을 넣어 택지가 공급됐다는 것이다. 1991년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총대를 메고 구속될 사람을 미리 정하는 등 각본대로 수사가 진행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재로선 수서와 대장동은 닮았다. 전개도 수서와 비슷하게 될지 지금으로선 모를 일이다. '겹눈'으로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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