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나 신발에서 두 폭을 한데 떼었다 붙였다 하는 장치가 있다. 단추나 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것을 우리는 ‘찍찍이’라 부른다. 이름하여 ‘찍찍이’는 어느 기술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옷에 엉겨 붙은 가시를 보고서 발명했다고 하며, 의류와 신발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찍찍이’라는 말에 관심을 두고 보면, 이런 물건에 ‘찍찍이’라 이름을 붙이는 한국말이야말로 기가 막히지 않은지? 소리나 모양새를 그리는 말의 일부에다가 ‘이’를 붙여서, 용도뿐만 아니라 느낌도 잘 살리는 표현을 무한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자동차에는 가려는 방향을 지시하는 등이 있다. 그것을 말할 때 우리는 ‘깜빡거리다’를 가져와 ‘깜빡이’라 이름 지었다. ‘깜빡이등’처럼, ‘깜빡이커서’라 말할 때도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행위를 두고서는 ‘깜깜하다’의 일부를 빌려 ‘깜깜이’라 한다. 반짝거리는 모양을 위해 뿌리는 가루의 이름은 ‘반짝이’라 붙였다.
모양새를 그리는 말은 확장되어 사람의 성향을 말하기도 한다. 요리조리 몸을 빼면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빤질이’ 또는 ‘뺀질이’는 ‘빤질거리다’에서 왔을 텐데, 재미있게도 그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모양새를 ‘반질거리는 구두’보다 더 센말로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비뚤어진 ‘삐뚤이’, 고약한 심보를 가진 ‘빼뚤이’에서도 비뚤어진 대들보보다 더 비뚤어진 말 멋이 느껴진다.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이 가을을 그려줄 말들은 어떤 것일까? 오늘은 어느 예능프로그램처럼 아는 말들을 붙여 보자. 가을은 ‘헛헛’하다. 해 지면 불어드는 서늘한 기운에 한 해가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헛헛하다’는 원래 배 속이 빈 것을 말하지만, 채워지지 아니한 허전함이란 그보다 더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외로움에 빠지랴. 가을을 ‘훌훌’하게 보자. 날개를 치며 가볍게 날기 위해, 가을은 지난 시간을 미련 따위를 툭툭 털어버리듯이 정리할 때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초록이 옅어진 잎들을 훌훌 털어내는 거목처럼 말이다. 우리의 가을을 ‘함함’하게 보내자. 누가 뭐라 해도 가을은 열매의 달이다. 열 달을 산 시간의 조각들이 이제 되돌아와 퍼즐을 맞추는 때다. 보드랍고 반지르르한 털북숭이를 맞듯, 그렇게 가을의 여유를 풍성하게 누리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