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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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이 세상이 재현되는 방식은, 세상 자체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작품이다.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묘사해놓고 그것이 절대적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Her View : 여성의 관점
(26) 치료받지 못한 소녀는 자신을 미워했다(9월30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허스토리가 한 주 간의 재충전 시간을 갖고 돌아왔어요. 3주 전에 보내드렸던 뉴스레터, 기억하시나요? '남성 표준 세상'에서 데이터에는 젠더 공백이 생기고, 여성들의 경험은 간과되기 쉽다는 문제의식을 함께 나눠보았는데요. 이번 주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한국일보의 기사를 소개하려고 해요. 여러분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떠올릴 때 어떤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혹시 눈에 띄는 과잉행동을 하는 어린 남자아이들의 모습이었나요? 그게 바로 이번 주의 주제입니다.
▦ 조용한 여성 ADHD 환자들
ADHD는 선천적ㆍ후천적 요인으로 전두엽을 비롯해 뇌의 집중력을 담당하는 부위의 발달이 지연되는 신경 발달 장애로 정의됩니다. 과잉행동, 충동성, 주의력 결핍 등이 주된 증상으로 나타나요. 그런데 ADHD의 증상으로 과잉행동이나 충동성이 주로 묘사되는 탓에, 주의력 결핍만 두드러질 때에는 이를 타고난 성격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이른바 '조용한 ADHD'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예요.
많은 여성 ADHD 환자들의 증상은 '조용하게'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을 향한 사회적인 고정관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든 여성 ADHD 환자가 조용한 ADHD 증상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과잉행동이나 충동성을 감추려는 사회적 위장능력을 자연스럽게 키우게 됩니다. 한국일보가 만난 7명의 성인 여성 ADHD 환자들 역시 덤벙거리거나 욕설을 하는 등 사회가 허용하는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숨기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경험을 들려줬어요.
때문에 여성 ADHD 환자들은 우연한 계기로 ADHD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예컨대 ADHD로 인한 부주의와 실수가 기분장애와 수면장애 등의 질환으로 이어져 병원을 찾았다가 ADHD를 알게 되는 거예요. 미국 조지타운대의 소아청소년과 임상 조교수이자 국립 여아ㆍ여성 ADHD센터 공동 설립자인 패트리샤 퀸 박사는 자신의 저서 '주의가 산만한 소녀들'에서 "여성 환자는 증상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진행돼 학업이나 사회성 등의 문제가 심각해져야 깨닫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 젠더 편견으로 늦어지는 진단
2000년 이전까지 ADHD는 남성의 병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최근 20년간 대규모 추적관찰 연구가 다양하게 이뤄지면서 비로소 여자 소아ㆍ청소년ㆍ성인에게도 ADHD가 상당히 발생한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ADHD 연구자들은 잠재적 환자 성비가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자신에게 발현된 증상이 ADHD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남아, 초등학생, 정신 사나움, 시끄러움으로 대표되는 ADHD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인해 여성들은 선뜻 병원으로 향하지 못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여성 ADHD 환자 수는 남성의 35%에 그쳤습니다. 또 남성은 80%에 달하는 4만 7,272명이 성인 이전(0~19세)에 진단을 받은 반면, 여성은 58% 정도만이 소아ㆍ청소년기에 자신의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앨런 리츠먼은 ADHD가 있는 여자아이 4분의 3이 진단받지 못했다고 추정했어요.
▶ 성인이 되어 ADHD 진단을 받은 여성들의 이야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1415200003155)
▦ 더 많이 이야기하는 여성들
'당신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에 기뻐할 수 있을까요? ADHD 진단을 받은 여성들은 이 말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요. 그 동안 '나는 집중력이 약하고 정신이 산만하다'며 스스로를 괴롭게 해 왔기 때문이에요. 약물치료를 시작한 후 ADHD 환자들은 집중력과 능률도 향상됐다고 합니다.
병명을 찾게 된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다른 여성들이 자신처럼 오랜 시간 헤매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무엇보다 여성 ADHD 연구가 더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임상심리학자 신지수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성인 ADHD의 경우 진단 척도가 백인 성인 남성에 맞춰져 있고, 약물 개발 과정에서도 일반적으로 남성을 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여성은 신체에 비해 고용량을 복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어요.
▶ ADHD 질병 존재를 알리는 여성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1616470001240)
▦ 한 걸음 더
그런데 우리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까요? 해외에는 성인 ADHD가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데 실패했다고 여겨질 때 따라붙는 여러 낙인 중 하나라고 보는 대안적 페미니스트 관점이 있어요. 최근 여성 ADHD 진단과 약 복용 비율이 크게 늘어난 건 안 그래도 완벽함을 요구받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부족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더 완벽한 슈퍼우먼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일 수 있다는 거예요.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헬렌 윈터, 정신의학과 의사 조애나 몬크리프, 에식스 대학의 의료사회학 수석 강사 이완 스피드는 2015년 ADHD 여성들의 경험과 해설이 등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분석한 연구(ADHD 여성의 젠더 수사법에 대한 담론 분석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4780887.2015.1050748)를 진행했는데요. 해당 영상들 속에서 ADHD가 여성의 '성취도 미달'을 공식화하는 동시에 해결법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었어요. '가사를 완벽히 끝내기 위해서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이런 문제제기가 혹시 병원으로 향하려던 여성들의 발걸음을 붙잡을까 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점까지도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 허스토리가 있는 거겠죠? ADHD 여성들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전혼잎 기자는 허스토리에 이렇게 말했어요. "여성 ADHD 진단의 급성장이 자신의 문제를 여성 내부, 정신적인 데서 찾으라고 지시해왔던 사회적 편견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데에 동의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여성 ADHD 담론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려면 ADHD가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어요."
허스토리 역시 직장과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은 OOO 해야 한다'는 규범이 여성에게 이중 부과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담론을 만들어 가야겠죠. 중요한 건 그것이 병 때문이든, 과도한 사회적 요구 때문이든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겨온 여성들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 거예요. 오늘 나에게,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줄까요?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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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왜 20~30대 여성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걸까. 그동안 이해받지 못했던 고통에 다시 이름을 붙이고 고통에 대처하는 새로운 문화를 찾아서.
한국일보에 젠더살롱을 연재하고 있는 하미나 작가가 2030 여성들의 우울증을 취재ㆍ연구해 내놓은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어요. 저자 또한 제2형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진단 받은 당사자이기에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증을 당사자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답니다.
저자는 2019년부터 31명의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울증 환자들이 살아온 삶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개인의 서사로 끝나지 않고,고통이 생겨난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게 합니다. 자신의 우울증을 담담히 풀어내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경험, 사회에 대한 울분으로 연결돼요.
올해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우울 점수가 7.1점(총점 27점, 평균 5.7점)으로 가장 높았고, 우울 위험군 비율도 30대 여성이 31.6%(평균 22.8%)로 가장 높았어요. 여성들이 아픈 이유는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닙니다. 2015년부터 "페미니스트로의 집단적인 각성"을 한 우리들은 더 이상 이전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2030 여성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아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병으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관련 기사 읽어 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52313420000890)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으면 우울증 증상은 완화됩니다. 그렇지만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병원에서 해결해주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타인의 고통을 폄훼하거나 섣불리 지워버리지 않고, 취약함을 공유하고 내보이는 것"이라고 하 작가는 말합니다. "이것은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니 괜찮다"는 말을 전하며, 이번 주 뉴스레터를 마감합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9월 30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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