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국내 공장의 생산물량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노조원 간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단지 인기모델 생산에 대한 기득권 다툼을 넘어, 갈수록 일감이 줄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데 대한 공포감이 이번 노-노 갈등을 불러온 근본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친환경차 비중이 높아질수록 일자리 추가 감소가 불가피해, 비슷한 갈등은 계속 커질 것이란 우려도 높다.
노조 간 생산물량 조정 회의, 노조가 막아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4차 고용안전위원회(고용위)’가 생산물량 이전에 반대하는 울산4공장 노조원들의 회의장 봉쇄로 무산됐다.
이들은 노조 대표들의 회의장 진입을 막았고, 이 과정에서 전주공장 노조 간부가 울산4공장 측 노조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울산을 제외한 다른 공장 노조 대표들은 울산4공장 노조의 공식사과와 고용위 재개를 요청하고 있다. 울산공장 노조 관계자는 “유선상으로 전주공장 측에 사과를 전달했다”며 “고용위는 이달 6일 다시 개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팰리세이드’ 증산을 위해 울산4공장의 생산물량 일부를 전주공장으로 이관할지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사측은 다목적차량(MPV) ‘스타리아’를 전주공장에서 일부 생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감이 부족한 전주공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울산4공장의 팰리세이드 생산량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 트럭 등 상용차를 주로 생산하는 전주공장은 연간 생산 능력이 10만5,000대지만, 지난해 생산량은 3만5,000여 대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공장은 휴업이 잦아졌고, 직원 임금도 현대차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사측 제안은 두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전주공장은 스타리아뿐 아니라 팰리세이드까지 넘겨 달라고 주장했다. 인기차량으로 안정적인 수출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주공장 노조 관계자는 “고용 안정을 위해서 반드시 생산물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대응 방안을 곧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울산공장은 “팰리세이드 이관은 가능하지만 스타리아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팰리세이드는 미국 현지 생산이 검토되는 만큼 물량 감소가 예정됐지만, 스타리아는 울산4공장에서만 생산하기 때문에 뺏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매월 2,000~3,000대가량에 달하는 팰리세이드의 출고 적체는 당분간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면엔 '일감 감소' 구조적 불안감 자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 이면에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전동화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바뀌면서 일감 축소에 대한 공포감이 노노 간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2040년 이후 한국, 미국, 중국, 유럽 등 4대 시장에서 친환경차만 판매할 계획이다. 전기차의 부품수(약 1만8,900개)는 내연기관차(약 3만개)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조립라인 투입 인력이 줄 수밖에 없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향후 5년 내 세계 자동차 산업 종사자 1,100만 명 중 300만 명이 실직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 역시 2019년 이후 생산직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동화 비중이 높아질수록 자동차 산업 고용 감소는 불가피하고, 이번 노조 간 갈등 역시 단순한 생산 기득권을 넘어선 생존권 차원의 문제”라며 “지금은 울산, 전주, 아산 등 일부 공장에서만 갈등이 있지만, 앞으로 생산물량이 줄게 되면 공장 간 갈등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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