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권에 성공한 탈레반의 일거수일투족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아직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과거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성 인권을 중시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탈레반은 기존 여성부를 폐지하고 권선징악부를 부활시켰다. 아프가니스탄 현지 언론사들의 취재 활동까지 위축되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합법 정부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탈레반은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아프간 영토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실제 10월 1일 탈레반 특수부대가 수도 카불과 동부 난가하르주에 있는 이슬람국가(ISIS)의 은신처를 급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결속을 우려한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 대항해 함께 싸워 온 만큼 탈레반이 알카에다와 절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의혹의 중심에는 탈레반 과도정부의 새 내각 구성이 있다. 지난달 7일 발표된 과도내각은 그동안 약속해 왔던 포용정부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과거 탈레반 집권기 엄격한 이슬람법 적용을 추진한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최고지도자인 '아미르 알 무으민(신자의 사령관)'의 자리에 올랐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아들이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것을 보면 아쿤드자다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총리에는 탈레반 최고위원회인 레흐바리 슈라를 이끌어 온 하산 아쿤드가 임명되었다. 미국과의 철군 협상을 맡았던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부총리직을 맡았고, 1994년 탈레반을 창시한 물라 오마르의 아들 무함마드 야꿉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단연코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내무장관 시라주딘 하까니였다. 미국 지정 테러단체인 '하까니 네트워크'의 수장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현상금 1,000만 달러를 내걸고 수배해 왔기 때문이다.
돈줄이 끊어지고 있는 가운데 무너진 아프간 사회를 복원해야 하는 탈레반 과도내각의 앞날이 험난해 보인다. 그런데, 탈레반이 직면한 문제는 과도내각 안에도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과도내각의 조직도를 보면 최고지도자, 총리, 부총리, 각부 장관의 순으로 확고한 위계질서가 잡힌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 권력 구도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탈레반의 주축인 아프간 파슈툰족은 주로 길자이족과 두라니족으로 구분되는데, 세부 부족에 따라 정치적 지지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일례로 파슈툰 길자이족은 국방장관 무함마드 야꿉을, 파슈툰 두라니족은 바라다르 부총리를 밀고 있다.
무엇보다 탈레반과 하까니 네트워크 사이에는 분열 요인이 숨겨져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하까니 네트워크와 탈레반 간 우호 관계는 1995년 물라 오마르(탈레반 창시자)와 잘랄루딘 하까니(현 내무장관 시라주딘 하까니의 아버지)가 손을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물라 오마르와 잘랄루딘 하까니는 처음부터 그리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특히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창출하고 주요 요직에 하까니 네트워크의 인사들을 배제하자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물라 오마르는 잘랄루딘 하까니에게 국경 및 부족 문제 담당 장관 자리를 내어주었으나 진정한 동지로 거듭나지는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탈레반 과도내각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권력안배를 감안해 하까니 네트워크의 수장에게 내무장관 자리를 내줘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과도내각 최고지도자의 상징성에 주목하며 아쿤드자다가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서 서열 1위에 등극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잠재된 내적 균열 요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탈레반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