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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조건 속 언론의 ‘이상’ 지켰다”... 무라토프·레사에 노벨 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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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조건 속 언론의 ‘이상’ 지켰다”... 무라토프·레사에 노벨 평화상

입력
2021.10.08 19:10
수정
2021.10.08 20:5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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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왼쪽 사진)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 AP 연합뉴스

2021년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왼쪽 사진)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 AP 연합뉴스


2021년 노벨평화상은 ‘반체제 언론인’의 품에 안겼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독립 언론의 길을 걸어 온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를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시도했던 이른바 '스트롱 맨'에 대한 경고 성격도 담겼다는 지적이다.

노벨위원회는 이날 “민주주의와 항구적 평화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해 이 두 명에게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레사와 무라토프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더 불리한 조건에 직면한 세상에서 이상(理想)을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의 대표”라고 밝혔다. 언론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1935년 나치독일 치하에서 평화운동을 하며 독일이 비밀리에 재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86년 만이다.

레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 넘게 탐사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에는 탐사 전문 매체 ‘래플러’를 창립해 현재까지 매체를 이끌고 있다. 특히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취임 이후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 보도에 앞장섰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필리핀 서민들에 집중했다는 평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레사의 활약을 두고 “저널리스트와 대통령이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2018년 레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세계 신문협회도 언론자유에 큰 공헌을 한 공로로 ‘황금펜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노벨위원회는 “그는 표현의 자유를 사용해 모국 필리핀에서의 권력 남용, 폭력 사용, 권위주의 심화를 폭로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필리핀 정부가 3년간 벌인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반인도주의 범죄 조사에 착수하면서 두테르테 대통령을 정조준한 데에도 레사의 역할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라토프는 지난 1993년 러시아의 대표적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한 주축 멤버다. 1995년부터 24년 동안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을 지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재임 시기부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복귀가 이어지는 러시아 상황에서 신문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다. 무라토프가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중 노바야 가제타는 1999년 연방보안국(FSB)의 모스크바 아파트 테러 사건 개입 의혹과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인종 청소 등을 폭로했다. 노벨위원회는 “사실에 기반한 저널리즘과 직업적 성실성을 바탕으로 다른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러시아 사회의 비난 가능한 측면에 대한 중요한 정보 출처가 됐다”며 “무라토프는 신문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하는 한 언론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언론인의 권리’를 일관되게 옹호했다”고 공로를 기렸다.

언론인의 책무를 다하는 중 불상사도 속출했다. 이들의 정론직필이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면서다. 레사는 사기와 탈세, 명예훼손은 물론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최소 두 차례 체포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지난해 6월 필리핀 법원은 온라인 명예훼손 혐의로 레사와 전직 래플러 직원에게 최대 징역 6년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무라토프도 생명의 위기를 수없이 넘겼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노바야 가제타 기자는 최소 6명이다. 거리에서 둔기에 맞아 사망하는가 하면 자택이나 거리에서 저격당해 숨진 기자도 있다. 무라토프와 손발을 맞췄던 유리 세코치힌 부편집장은 독극물에 중독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위원회는 레사와 무라토프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올바른 언론의 존재 이유를 역설했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없이는 국가 간의 우애와 더 나은 세계 질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다. 노벨위원회는 또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자유는 정보에 입각한 대중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며 “레사와 무라토프에게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은 이런 기본 권리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을 탄압하는 위정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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