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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째 국적 없는 고려인 3세 "그림자처럼 산다"

입력
2021.10.25 04: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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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라 없이 지낸 150년, 고려인
내전 피해 고향 돌아왔지만 국적 못 얻어
빈곤과 무국적 신분의 끊을 수 없는 굴레
뚜렷한 이유 없이 14년간 국적 못 받기도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국가에 소속되지 못해 학교에 갈 수도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이들의 삶은 깜깜한 절망 그 자체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황만금과 함께 구소련 시절 최고의 집단농장 책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1세대 고려인 김병화(1905~1974)는 강제이주 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땅에서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으면서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 김병화박물관 한가운데 그의 초상화와 함께 그대로 기록돼 있다. 이정원 기자

황만금과 함께 구소련 시절 최고의 집단농장 책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1세대 고려인 김병화(1905~1974)는 강제이주 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땅에서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으면서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 김병화박물관 한가운데 그의 초상화와 함께 그대로 기록돼 있다. 이정원 기자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인들은 모여 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상업지구에서 ‘코리아타운’을 볼 수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들녘 한가운데에 ‘고려인 집성촌’이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차로 40여 분, 치르치크강 동쪽의 더스트릭 마을. 1937년 강제이주한 고려인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만들었다는 이곳은 지난해 '황만금 마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구소련(CCCP) 시절 치르치크 집단농장 책임자로 마을을 소련 최고의 모범농장으로 일궈 사회노동영웅 칭호와 레닌 훈장을 받은 고려인 1세 황만금(1919~1997)을 국가적 위인으로 기리려는 현지 고려인 단체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마을의 모습은 1991년 소련 해체 이전, 그 영화롭던 한때에 멈춘 듯했다. 잘 정돈된 광활한 논밭과 소련 시절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농가주택은 그 시절 마을의 자랑거리였지만 지금은 쇠락의 징표와 다름없어 보였다.

"그림자처럼 산다" 국적 없이 24년째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가 이달 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황만금 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가 이달 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황만금 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이달 8일(현지시간) 황만금 마을에서 만난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의 삶도 마을과 함께 과거에 갇혀 있다. 장씨는 있지만 없는, 존재 자체가 불법인 무국적자다. 장씨의 부모는 모두 우즈베키스탄 국적자였지만 장씨 본인은 그 나라 국적을 받지 못했다. 1971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투르크메니스탄 국적도 없다.

장씨는 "소련 해체 후 지금까지 직업도 집도 없이 그림자처럼 살고 있다"며 짐더미 속에서 빨간색 수첩을 꺼내 보였다. 구소련 정부가 강제이주 한인에게 발급한 여권이었다. 앞표지에 'CCCP'란 글자가 박힌 여권에는 '1971년생' '카레이스키(고려인)' 등 장씨의 신상정보가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1988년 발급받은 이 여권으로 그는 병역 의무도 마쳤다.

장씨의 실재를 증명해줄 유일한 서류였던 여권은 그러나 효력을 다한 지 오래다. 사라진 나라의 여권으로는 이제 마을 밖을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대처로 나가려면 치르치크강을 건너야 하지만 검문소를 통과할 수 없다. 장씨는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강제이주시킨 뒤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검문소를 세워 통제했다"며 "나는 지금도 스탈린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씨가 구소련 시절 발급받은 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가 구소련 시절 발급받은 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빈곤과 함께 대물림되는 무국적 신분

내전을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이후 20년 넘게 장씨는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간 이웃의 빈집을 빌려 살고 있다. 이정원 기자

내전을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이후 20년 넘게 장씨는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간 이웃의 빈집을 빌려 살고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는 다섯 살이던 1975년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출생지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타지키스탄 집단농장으로 옮겨 가 살았다. 소련 붕괴 이후 타지키스탄에서 터진 내전이 길어지면서 1997년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란왔지만, 그를 기다린 건 지금까지 장장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무국적자의 삶이었다.

당연히 우즈베키스탄 국적일 거라 믿었던 장씨는 역사적 격변 속에 잃어버린 신분을 여태 되찾지 못했다.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처음 안 1997년 국적을 취득하려 했지만 거주지 등록 제도에 발목이 잡혔다.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1991년 이후 거주지 등록을 하지 않은 기간을 따져 3개월마다 20달러씩 지불해야 한다"는 담당 경찰의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못됐다. 지금은 내야 할 벌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최근엔 출생증명서 제출 조건도 생겼다. 이를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에 다녀오려면 경비 80달러가 추가로 든다.

한국 정부가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외교에 공을 들이면서 고려인 무국적자 문제는 해결의 전기를 맞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무국적 고려인에게 국적 취득을 허용한 것.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가 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뒤 줄곧 무국적자 신세였던 김 기나지(61)씨 등 600여 명의 고려인이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장씨는 이 기회조차 붙잡을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이 닿아 있어 무국적자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무국적자로 지낸 기간에 거주지 등록을 하지 못해 그간의 이동 경로를 증명할 수 없다. 거주지 등록을 하려면 벌금도 내야 한다. 장씨는 자신에게 부과될 벌금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정한 벌금 기본값(BRV) 약 20달러에 거주지 비등록 기간 20여 년을 분기별로 곱한 금액으로 알고 있다.

신분 증명을 할 수 없어 그림자 노동을 해야 하는 장씨에겐 감당하기 힘든 돈이다. 한국 정부가 벌금을 대신 내줄 거란 기대는 애초 없었다. 인테리어 기술이 있는 장씨는 "같은 마을 고려인들로부터 가끔 일감을 받아 버는 일당(3달러)으로 생활하는데, 그마저도 최근 한 달간은 일이 없었다"며 "돈을 모아야 거주지 등록을 하고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 국적이 없으니 돈도 벌 수 없는 굴레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장씨의 아내와 12세 아들이 집 앞에 서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의 아내와 12세 아들이 집 앞에 서 있다. 이정원 기자

장씨는 무국적자 신분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해야 하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프다. 거주지 등록을 못한 탓에 장씨 자녀들도 사실상 무국적 상태를 앞두고 있다. 장씨는 "아이들이 만 16세가 되면 국적을 받아야 하는데 그 전에 벌금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지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19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고려인 집성촌을 직접 방문해 무국적자 실태를 파악했다. 당시 집계된 고려인 무국적자 수는 총 843명이었다. 한국 정부는 공식 집계를 한 적이 없기에, 현재로서는 이 정보가 고려인 무국적자 규모와 관련된 유일한 통계다. 그러나 현지 한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라고 평가한다. 한 관계자는 "중앙아시아 일대 고려인의 무국적자 비율은 10%에 달한다"며 "사망자 등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따져도 우즈베키스탄 내 고려인 가운데 1만여 명은 무국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무국적자가 5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그중 많은 인원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어머니 나라 찾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제적 형편이 낫다고 해도 무국적자의 삶은 크게 다를 게 없다.

구한말 러시아 연해주에 터를 잡았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외증조부모로부터 4대를 내려왔건만,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알렌산 카쟈란(30)씨는 국적이 없어 프로축구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고려인 어머니와 아르메니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카쟈란씨는 아르메니아에서 출생해 7세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뒤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라 자신도 당연히 이 나라 국민이라고 생각했지만, 국적이 부여되는 16세가 됐을 때 그에겐 영주권만 주어졌다. 10년 거주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1년만 기다리면 10년 거주 기한이 채워져 국적이 나올 거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네 차례 신청 끝에 지난달 국적을 받을 때까지, 14년간 국가는 카쟈란씨의 거듭된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자신이 무국적자여야 하는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담당 경찰은 "대통령 사인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2019년 고려인에 대한 국적 부여가 허용됐을 때도 카쟈란씨는 아버지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주권이 있으니 그마저도 없는 무국적 고려인보다 형편은 나았지만, 하는 일마다 제약이 따르긴 매한가지였다.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 프로축구 리그 선수가 됐지만 신분은 번번이 걸림돌이 됐다. 구단들은 내국인 지위가 없어 외국인 급여를 줘야 하는 카쟈란의 영입을 꺼렸다. 해외 원정경기라도 있으면 더 난감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무국적자에게 발급하는 여행문서인 '회색 여권'을 인정하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입국 때마다 팀 동료들을 먼저 보낸 뒤 환승게이트에 남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번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고려인 4세 알렉산 카쟈란씨가 이달 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외곽에 있는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세 살짜리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들은 엄마에게 카쟈란씨의 영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고려인 4세 알렉산 카쟈란씨가 이달 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외곽에 있는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세 살짜리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들은 엄마에게 카쟈란씨의 영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고려인 아내를 만나 세 살, 한 살짜리 두 아이를 둔 카쟈란씨는 축구선수 생활을 접고 영업사원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 명의의 집을 살 수도, 마음대로 거주지를 옮길 수도 없었다. 휴대폰은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서 개통했다. 더구나 외국인으로 간주돼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세금은 내국인보다 2배가량 더 내야 했다. "무국적자는 차량 번호판 색깔도 다릅니다. 더 많은 의무를 지고 살면서도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카쟈란씨는 2018년 증조부모의 나라를 찾기도 했다. 고려인 지원단체 주최로 고려인 무국적자 문제를 다루는 콘퍼런스에 초청을 받아서다. 그는 "(콘퍼런스가 열린) 경기 안산시 공무원들도 참석한 자리였고, 사연을 얘기해 달라기에 말했더니 다들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였다"며 "나를 불쌍하다고만 할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카쟈란씨는 "지난달 경찰에 한국 언론이 무국적자인 나를 취재한다는 사실을 알렸더니 느닷없이 국적이 나왔다"며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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